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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최갑수의맛깊은인생]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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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서울 퇴계로에 가끔 가는 식당이 있다. 인현시장 입구에 자리한 밥집이다. 근처 시장 상인들과 을지로에 기대 밥을 먹고 사는 직장인들이 점심, 저녁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찾는다. 고등어, 삼치 등 생선구이 백반과 두루치기, 순두부를 판다. 이 집 가까이 가면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행복하게 한다.

이 집은 점심저녁 없이 늘 붐빈다. 점심시간에는 줄도 서야 한다. 생선구이 백반 하나 시켜보면 7000원에 이 정도 가격에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다니 하고 놀란다. 생선도 노릇하게 잘 구웠고 쟁반에 담겨 나오는 반찬도 하나하나 맛깔스럽다. 점심 때는 갓 지은 밥을 담아준다. 문을 연 지 30년은 족히 넘었을 터인데,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문턱이 닳는 이유는 이 때문이리라. 저녁이면 힘든 하루 일을 마친 사람들이 막걸리 한 병과 생선구이 하나 시켜 놓고 공기밥 한 그릇을 먹고 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밥을 차리느니 밖에서 한 끼 해결하고 들어가는 게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표로에도 가끔 가는 식당이 있다. 퇴계로의 식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골목 사이에 숨은 백반집이다. 점심 때는 반찬 서너 가지를 곁들인 백반을 팔고 저녁에는 수육과 홍어찜 등 술안주를 내놓는다. 청국장과 순두부백반이 고작 6000원이고 보쌈 한 접시가 1만5000원이다. 손님이 없으면 일찍 문을 닫고 손님이 있으면 새벽 두 시까지 안주를 봐준다.

이 집에는 주로 아홉 시 넘어서 간다. 여닫이 문을 드르륵 열면 테이블이 네 개 정도 놓여 있고 한쪽에 방이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주방 앞 빈 테이블에서 쌈채소와 멸치볶음을 놓고 양은 국그릇에 밥을 담아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아주머니의 식사에 방해가 될까봐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셀프’로 꺼내와서는 마신다. “아주머니, 식사 천천히 끝내고 홍어찜이나 하나 해주세요.”

이 두 집에 요즘 눈에 띄게 손님이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비단 이 집들뿐이 아닐 것이다. 서울, 아니 우리나라, 전 세계의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 줄었다가 아니라 아예 없다. 주변에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들이 많은데, 다들 매출이 70퍼센트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평소같으면 자영업하는 사람들 특유의 엄살이겠거니 하고 여기겠지만, 요즘 분위기로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우선 나부터 원고청탁, 강연, 출장이 다 끊겼다. 스케줄러가 휑하다. 모든 직종,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다.

이 두 집 모두 이 힘든 시기를 버텨 내시기를.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다시 이 두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테니 말이다. 가서 막걸리 한 잔 가득 부어드리며 얼마나 고생많으셨냐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디 다들 견디시기를. 그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최갑수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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