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에 불신 키우는 정치 / 극단적 진영 정치 투표로 심판해야
황정미 편집인 |
연일 쏟아지는 코로나19 확산세와 경제 추락 소식은 이 세기적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부추긴다. 전 세계 정치·경제 지형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국가 지도자들은 너 나 없이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전시 대통령’이라고 불렀는데 미국에서는 9·11 테러보다 수습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당시에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 적을 이기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통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위해 국민 대부분이 일상을 포기해야 한다.
불안한 현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인의 헌신, 배려로 버틸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나라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리더십이, 정치가 코로나 정국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썼다. 왜 안 그렇겠나. 위기 극복 비전을 보이고 국민 에너지를 모으는 게 정치가 할 일이니 말이다. 스페인 독감을 다룬 ‘더 그레이트 인플루엔자(The Great Influenza)’ 저자 존 배리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신뢰에 기반한 정치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시간을 벌어줄 거라고 했다. 문제는 그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 최대 수혜자를 꼽자면 여당 정치인들이다. 총선용 위성 정당을 만든 역대급 꼼수가 코로나19 속보에 묻힌다. 스스로 “양심도, 염치도 없는 짓”이라던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차례로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을 내치고 친조국 세력과 손을 잡았다.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낙천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조국 자녀 입시 비리 관련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민주당과 형제’라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됐다. 미증유의 위기라는 코로나 폭풍 속에서 정파 이득을 위해 명분, 가치, 신뢰를 팽개친 민주당의 패권 정치가 절망스럽다.
“자기 이익 내려놓고 공공 이익을 찾는 게 정치 아닙니까. 국회 전체를 위해서, 국민 전체를 위해서 기득권을 내려놨다, 이 모습 한 번 보여주는 것, 이것 엄청난 것 아닙니까.” 지난 연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렇게 소리쳤던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여당 수뇌부 회동에서 “(비례정당)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당시 선거법 개정안 필리버스터에서 알바니아, 레소토, 베네수엘라 사례를 들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패를 경고했던 한국당 유민봉 의원은 “국민 불신만 키울 것”이라고 했다. 딱 그렇게 됐다.
“국민은 몰라도 된다”(심상정)던 준연동형 비례제는 21대 국회에서 사라지겠지만, 꼼수정치 결과는 극단적인 진영 대결로 남을 것이다. 조국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이를 예고한다. 통제 불능의 팬덤정치가 판칠 게 뻔하다. 걱정되는 건 극단 정치의 균형을 잡아야 할 중도층의 퇴각이다. 유권자의 30% 안팎을 차지하는 중도층이 정치 혐오에 등을 돌리면 진영 정치는 더 기승을 부리고, 정치 불신은 극심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온 건 공동체 이익을 먼저 고민했던 유권자들 덕분이다. 분노와 냉소를 키우는 대신 투표로 오만한 정치를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설사 차선도 아니고 차악을 선택해야 할 판이더라도.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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