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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혁신이 지워버린 생명의 눈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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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50년 전 자본주의 혁신에 공장 부속품이 된 동물과 인간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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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타다 금지법’이 지난 3월 초 국회를 통과하면서, 타다가 1년6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다. 법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타다가 혁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적어도 그 기원이 된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혁신이다. 혁신은 대단한 기술에 있지 않았다. 그저 플랫폼을 통해 교통수단을 원하는 사람과 제공하려는 사람을 ‘연결’했을 뿐이다. 양념치킨을 배달하는 라이더들, 자신의 차량을 타고 자기 돈으로 기름을 넣는 우버 기사들까지 플랫폼 자본주의는 새로운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150년 전 ‘실리콘밸리’

지금부터 150년 전에도 자본주의의 판도를 바꾼 혁신이 있었다. ‘바람의 도시’ 미국 시카고에선 동물이 우짖는 소리와 날것의 비릿한 사체 냄새가 골목 구석구석을 흘러다녔다. 시카고는 150년 전 자본주의의 ‘실리콘밸리’였다.

기업가 헨리 포드가 냄새나고 더러운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것은 역사적 우연이었다. 시카고 남서쪽 변두리에 있는 ‘유니언 스톡 야드’라는 거대한 정육단지를 둘러본 그는 반짝이는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거기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막을 연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자동차 생산 공정에 가져왔다.

유니언 스톡 야드는 지금 보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시설이었다. 아니, 도축장이라기보다는 21세기 거대한 자동차공장, 조선소를 연상시켰다. 호텔, 식당, 살롱, 사무실이 2300개 축사와 연결됐고, 겹겹이 세워진 도축장의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거대한 강물을 이루었다. 수만 마리 소가 우우거리는 소리, 수만 마리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가 대양을 항해하는 화물선의 엔진 소리처럼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끈끈하고 강력한 죽음의 냄새가 더해졌다.

시카고에서 정육산업이 발달한 것은 순전히 철도 발달에 기인했다. 19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소와 돼지 등 가축의 대다수는 서남부에서 키워졌다. 넓은 목초지대가 펼쳐지고 땅값이 쌌으니, 목장주들이 계속 서쪽 남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소비자는 동부 도시들에 몰려 있었다.

이 지리적 간격에 주목한 것은 식품업자가 아니라 철도회사였다. 당시 철도는 미국 동부에서 출발해 대륙의 외진 곳으로 모세혈관처럼 뻗어갔다. 철도회사들은 하나둘 시카고 변두리에 정육공장을 짓고 철도를 연결했다. 이 아이디어로 큰돈을 만질 수 있음을 직감한 뉴욕센트럴철도 등 한 무리의 철도회사들이 1865년 시카고 남서부 변두리 2.6㎢(약 78만 평)를 사들여 대규모 정육단지를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축장이자 육류 가공시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모리스와 스위프트 그리고 아머앤드컴퍼니 등 대규모 도축·가공 업체들이 입주했고, 주변 160㎞에 이르는 거미줄 같은 철도망을 타고 스톡 야드 구석구석으로 가축이 수송됐다.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 먼 곳에서 온 긴뿔소와 돼지, 양들이 기차의 화물칸을 메웠다. 긴 여행 끝에 살아남은 가축이 도착해 처음 가는 곳은 가축우리였다. 1.5㎢ 땅에 울타리를 세운 2300개 우리에서 가축은 운명의 날을 기다렸다. 7만5천 마리의 돼지, 2만1천 마리의 소, 2만2천 마리의 양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운명의 시간이 되면, 동물은 좁은 통로로 몰이를 당한 뒤 활강 장치에 끌려 올라가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유니언 스톡 야드는 이들을 고기로 바꾸었고, 이들은 고기가 되어 다시 기차를 탔다. 1865년 개장 이후 1900년까지 도살당한 가축은 4억 마리였다.

철도를 이용해 지리적 한계를 뚫은 게 도축장 외부의 혁신이었다면, 내부의 혁신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었다. 아머앤드컴퍼니가 1875년 입주하면서 맨 먼저 자동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전문 도축업자가 소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면, 기절한 소를 방혈시킨 뒤, 무거운 사체를 끌고 가 하나하나 해체하는 식이었다. 장인인 도축업자를 중심으로 여러 명이 달라붙어 일했다.

컨베이어벨트가 바꾼 도축장

그러나 아머앤드컴퍼니 공장에선 소의 운반을 기계로 자동화한 뒤, 운반의 흐름을 중심으로 노동을 수십 개로 잘게 쪼갰다. 뒷다리가 걸린 채 거꾸로 매달린 소는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였고, 각 작업 구역에서 한 번씩 멈췄다. 여기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각자 정해진 업무에 따라 맡은 부분을 해체했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고기는 또다시 기차를 탔다. 공장 앞에 대기하던 냉장실이 딸린 화물기차였다. 기차는 수많은 사체를 동부 도시로 실어 날랐다.

과거의 도축 방식은 도축업자와 동물이 일대일로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도살은 본질적으로 잔인했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도축업자의 무자비함을 막았다. 도축업자는 가끔 동물의 눈망울이 가슴에 맺혔고, 도망친 돼지는 그냥 놔두기도 했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는 달랐다. 노동자는 지정된 부위만 작업했다. 하나의 생명은 표준화된 생산 단위로 해체됐고, 각 단위를 생산하는 노동자만 남았다. 그들은 자신이 다루는 상품이 한때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어미와 함께 즐거워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생명임을 상상할 수 없었다.

노동자 구성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과거에 도축업자는 장인이었다. 소의 신체 골격과 성격 그리고 고기를 잘 아는 고집 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컨베이어 공장에서 그런 전문지식이나 직업정신은 필요 없었다. 노동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부위만 떼어내 손질하면 됐다. 숙련 노동자가 필요 없었으므로, 자본가는 최저임금에 뜨내기 노동자를 고용했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잘라버렸다. 이제 막 신대륙에 도착한 아일랜드계, 동유럽계 노동자가 자연스럽게 정육공장의 다수를 채웠다. 1921년 기준으로 4만 명이 일했다.

부속품이 돼버린 인간과 동물

1906년 업턴 싱클레어는 시카고에서 두 달 가까이 취재해 소설 <정글>을 내놓았다. 싱클레어가 내세운 주인공 유르기스 루드쿠스도 리투아니아에서 부푼 꿈을 안고 이민 온 젊은 사내였다.

“그도 리투아니아의 삼림지대에서 살 때 돼지를 잡아본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돼지 한 마리를 수백 명이 손질하리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곳의 규모는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한 부분이었다.”

공장식 축산 시대가 개막하자, 동물이나 인간 모두 공장의 지배를 받는 부속품이 되었다. 150년 전 정육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기댄 유르기스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띠링’ 소리를 기다리는 배달 기사들도 여전히 위태로운 삶을 산다. 지금 우리는 그들과 그들이 가져다준 양념치킨이 인간과 동물을 부속품으로 바꾼 혁신의 연쇄로 나온 역사적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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