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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건강칼럼]이학적 진단과 형태학적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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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 진단(diagnosis)의 어원은 관통하여(dia) 알다(gnosis)이다. 환자의 증상에 대한 원인을 여러 검사를 통해 유추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시행하는 검사에 따라 이학적 검사와 임상 검사로 나뉜다.

이학적 검사는 시진, 촉진, 타진, 청진 등을 통해 직접적인 정보를 얻는 방법이고 임상 검사는 이학적 검사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간접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통증 분야에서는 임상 검사 중 X-ray, MRI 등의 형태학적 검사를 많이 사용한다.


형태학적 진단은 영상을 얻는 데 편리하고, 주로 구조적 이상을 살피기 때문에 숨어 있는 병인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사진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반면 이학적 진단은 진찰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주의(vigilance)를 기울여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환자가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능을 평가할 수 있고, 관찰을 통해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색, 온도, 주름, 멍 등 미세한 변화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진찰하는 의사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면에서 비교적 주관적이라는 단점도 있다.


통증 진료를 하다 보면, X-ray 결과가 뼈는 괜찮은 것으로 나왔는데 왜 아프냐고 따지는 환자도 있고, 상과염이라고 진단하면 MRI도 안 찍어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 전형적인 형태학적 진단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힌 분들이다. 뇌를 찍는다고 꿈이 보이지 않고, 심장을 찍는다고 걱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꿈도 걱정도 형태는 없지만 존재하듯 통증도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지만 분명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확인하려 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른 진단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환자의 증상과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진단이다. 진단에 따른 치료로 증상이 좋아진다면 그 진단이 올바른 진단이란 뜻이다. 인과관계가 높은 진단을 내리려면 직접 정보를 얻는 이학적 진단과 간접 정보를 살피는 형태학적 진단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당연히 이학적 진단이다. 형태학적 검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학적 이상 이 무수히 많다. 이학적으로만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진단 순서로도 그렇다. 이학적 진단을 먼저 내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형태학적 확인을 하는 것이지, 이학적 진단 없이 형태학적 결과만 가지고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미국의사협회가 요통 환자의 MRI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권고까지 할까.


시대가 의사도 환자도 바쁘게 한다. 그러니 한 장의 사진을 걸어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시간도 줄이고 편하다. 그러나 그 편함의 선택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픈 곳을 치료하겠다는 원래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환자를 살피지 않고 사진만 걸어 놓고 진단하는 의사는 피해야 한다. 수고를 들이더라도 환자에 대한 직접 정보를 얻는 의사가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진정한 애정은 애써 살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석 행복마취통증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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