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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창]'괜찮다'와 '괜찮지 않다'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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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요즘 인터넷 서점에는 명상 하는 법, 불안 우울을 떨치는 법,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과 소통하는 법 등 지친 마음을 토닥이는 내용의 책들이 많다. 빠른 변화와 성장 지향의 경쟁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안 그래도 심리적 피로감이 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마저 장기화된 영향으로 풀이 된다.


일터 내 감정 대처, 인간관계 요령을 다룬 책 몇 권을 뒤적이다 그 곳에 소개된 영국 정부 디지털서비스(GDS), 즉 전자정부시스템의 운영조직 사무실의 포스터 사례에 크게 공감한 바 있다. 일명 '~해도 괜찮아' 리스트인데, 출근 첫날 그곳에서 무엇은 괜찮고 괜찮지 않을지 혼란스러울 신입 직원을 위한 행동 가이드 34가지가 씌어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아, 아플 땐 집에 있어도 괜찮아, 너무 바쁘면 거절해도 괜찮아, 책상이 지저분해도 괜찮아, 다른 사람 일에 피드백을 해줘도 괜찮아, 커피보다 차를 더 좋아해도 괜찮아.


따뜻한 환영과 배려를 재치 있게 전달하는 동시에, 신입 직원에 대한 기대 수준과 해야 할 일을 '하지 마라'가 아니라 '해도 좋다'는 긍정 표현으로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사례를 보며, 코로나19 관련 수많은 지침들을 떠올려 본다. 회식과 단체 운동, 공연 관람 등 이전에는 해도 괜찮았던 행동들이 괜찮지 않은 것이 되었고, 마스크 재사용을 두고 된다 안된다 논란을 벌이던 문제들은 슬그머니 괜찮은 것이 되기도 한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무시하고, 집회·예배를 하며, 유흥업소를 가면서도 '괜찮다'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인 자의적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휴업 확대, 개학 연기로 수입이 줄고 자녀 돌봄 걱정이 커지는 등 사회 곳곳이 괜찮지 않은데, 정치권은 공천 파동, 비례대표 정당을 놓고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 본디 재난은 약자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취약 계층 재난 기본소득은 재난이 터져야 논의가 시작되고, 그나마 실효성 공방이 한창이어서 약자들이 고통을 벗어날 그날은 멀기만 하다.


질병관리본부와 전국 의료진에게는 괜찮냐 묻기조차 미안하고, 부모님의 '우린 괜찮다'는 말씀을 들으니 평소 더 챙기지 못한 죄송함에 내 마음은 더 괜찮지가 않다.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의 그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며 모두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침착하게, 그리고 서로 위로하며 도움과 동행의 손을 내밀자.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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