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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의 창] 경제위기와의 `진검승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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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 사태가 190여 개국으로 확대되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질병의 공포를 넘어 전방위 경제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생산과 투자, 소비활동이 위축되며 실물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금융시장은 요동을 치며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는 질병 감염 사태라는 경제 외적 요인에 의한 실물 부문 위기로 시작되었다. 위기의 방아쇠가 금융 부문에서 당겨졌던 2008년 위기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질병의 공포와 겹쳐 심리적 불안이 증폭됐고, 누적돼 온 실물 부문 문제들이 질병 사태라는 도화선을 만나 연쇄적으로 터져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우선 급한 불을 꺼야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그에 따른 세부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금융시장 불안도 중요한 문제지만 가장 급한 곳은 산업 쪽이다. 매출과 수익이 급감하면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등 대출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소상공업과 자영업은 물론이고 취약한 중소기업도 대부분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그냥 두면 줄도산이 이어지고 일자리는 무더기로 사라질 것이다. 수개월 내 전 산업으로 확산돼 평소 괜찮은 중소기업과 대기업까지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되고, 핵심 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조차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다. 우선 회사채 매입을 포함해 기업에 직접 유동성 숨통을 터주어 줄도산 사태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기업에 유동성을 풀어주는 방법에서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의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이나 중앙은행의 회사채 매입은 적절하지 않고 시기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 지원 대상 평가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고, 중앙은행의 회사채 담보에 의한 통화 발행은 논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정부의 무상 지원 유혹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르는 이번 사태에서 무상 지원으로 '실탄'이 조기 고갈되면 추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신용 관련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는 금융기관 및 금융감독원 등과 정부부처, 한국은행이 긴밀히 협조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처럼 정부의 출연자금에 의한 기금 형식의 특별법인(SPV)을 설립하고 그 지원금을 담보의 일부로 회사채를 매입하게 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

이참에 옥석을 가려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신중해야 한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준비에 전문성과 시간이 필요한 구조조정을 성급히 시행하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성급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될 기존 대출의 상환 불이행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화와 신용경색 사태도 우려된다. 급한 불을 끄고 경제가 회복되면서 구조조정 문제를 다루어도 늦지 않다.

실물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 상황은 좀 더 복합적이다. 1997년,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대한 강화된 규제와 자체 노력에 의해 은행이 확보한 유동성과 일반적 건전성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반면 부실채권 비중 제한과 최대 예상손실액 제한 등 은행 규정 강화로 은행들이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출 연장, 회사채 매입 등 기업 유동성 공급이란 금융기관의 사태 해결 노력에 결정적인 장애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처럼 양적완화로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확보해주고, 한시적으로나마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와 싸움은 진검 승부다. 검을 씀에 있어 신속 과감하되 아껴서 잘 써야 한다. 한 번의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편 가르기와 이데올로기, 정치적 이해관계도 절대 배격해야 할 패배 요인이다. 향후 2~3개월이 최대 고비일 것이다. 위기에 강한 민족적 저력이 다시 한 번 크게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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