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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상처와 고통의 무늬가 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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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 지음/아르테·1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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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사진)의 중편 단행본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문신을 소재로 삼는다. 요즘은 ‘타투’라는 외래어로 더 익숙한 이 행위와 그 결과물이 소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구병모는 판타지를 비롯한 장르소설과 사실주의적 소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쓰는 작가다. 이번 소설은 그의 이런 특장을 잘 살린 작품이다. 가정폭력과 ‘갑질’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인가 하면, 소설 속 주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는 예의 판타지적 설정이 자연스럽게 도입된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소설 말미에서, 주저하고 불안해하며 문신을 하러 간 중년 여성 시미에게 ‘문신술사’를 자처하는 타투이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 제목을 이해하게 함과 동시에, 문신에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이 영혼의 고통과 연결됨을 알게 한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런 고통의 경험이 거꾸로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이다. 소설 앞부분에서, 시미의 젊은 직장 후배 여성인 화인이 자신의 목 뒤쪽에 새긴 샐러맨더 문신을 두고 “잃었던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금 심장에 고이는 듯”했다고 설명하는 것을 보라.

소설은 화인의 아비가 10층 아파트 창밖으로 떨어져 죽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평소 딸에게 툭하면 손찌검을 일삼던 아비는 화인의 목 뒤에서 문신을 발견하고는 ‘창녀’ 운운하며 더욱 흥분해 날뛰던 끝에 죽음을 맞는다. 아비의 죽음을 두고 화인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나를 지켜줬어요.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이러다 죽을 것 같았을 때. (…) 그리고 자기 일을 마치고 떠나갔어요.”

덜떨어진 아비가 딸을 향해 퍼부은 저주와 폭행은 화인이 다니는 회사 상무인 중년 남성이 역시 화인의 문신을 구실로 저지르는 언어 폭력과 다르지 않다. “아이고, 이제 보니 우리 아가씨, 이렇게 발랑 까진 줄 알았으면 내 안 뽑았지. 내 딸이 이러고 집에 들어왔어봐, 다리몽댕이를 그냥.”

소설에서는 화인 아비 말고도 데이트 폭행 및 피고용인에 대한 고용주의 갑질 폭행이 묘사되고, 그 가해자들은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가해에 대한 ‘응징’으로 해석될 법한 마무리인데, 응징의 주체에 대한 궁금증에는 “보통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일컫는 지표면에서 1센티미터쯤 떨어져 있는”이라는 소설 속 표현으로 답을 대신하도록 하자.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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