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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고]반복되는 전염병과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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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머니투데이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9월에 이미 서울에 환자가 나타났고 10월에 전국적인 유행이 절정에 달해 공사립학교와 사숙은 휴학, 각 관청과 단체에서는 시무를 보지 못했다...이 감기에 대한 예방칙은 전혀 없고 다만 감기에 걸리지 않기만 바라는 바이다"

1918년 '서반아 감기'로 불리던 스페인 독감이 식민지 조선을 휩쓸던 당시 총독부 연감과 매일신보에 묘사된 우리나라 상황이다. 문장표현과 단어만 조금 다를 뿐 오늘날의 코로나19(COVID-19) 사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100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통계를 보면 당시 스페인 독감은 지금의 코로나19 보다 훨씬 강력했다. 한반도 전체 인구는 당시 1600만명 내외로 추정되는데 전체 인구의 38%인 600만명이 감염됐다. 사망자수는 14만명에 육박했다. 치사율은 2.3%, 현재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치사율(1.3%)보다 1%p 높았다.

이처럼 전염병의 대유행(pandemic)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 숫자가 훨씬 많다. 21세기에도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이 발병했고 발병주기도 빨라지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도 않았지만, 종식되더라도 앞으로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대유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동안 과학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전세계 어디든 하루 만에 닿을 수 있어 바이러스의 글로벌 전파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다른 하나는 지구온난화로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모기나 박쥐의 서식지가 많이 늘어나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앞으로도 전염병의 대유행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방역과 공중보건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작동하고, 전염병 발생시 위기관리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점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주어진 범위 내에서 경제활동을 최대한 가능케 하는 시스템에 대한 점검이다. 향후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해 대유행할 경우 또다시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며 금융부문도 극심한 자금난에 직면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 어떻게 자금공급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위기대응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15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현장에서 금융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과거의 금융위기 경험에서 보면 금융지원 패키지가 발표돼도 막상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도 무조건 정부의 보증이나 금융지원에 의존하지 말고 어려운 기업들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어려운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해줄 때 금융회사의 존재감이 살아난다.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공적자금 투입 때마다 논란이 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지금 같은 시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전염병을 통해 공중보건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졌듯이 금융위기도 수차례 겪으면서 필요할 때 자금을 공급해줘야 기업도 살고 금융회사들도 사는 것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빛을 발하고 있듯이 이제는 기업들의 줄도산을 막기 위한 '자금난 덜어주기'가 빛을 발해야 할 때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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