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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부정부패 척결로 이어진 김정은의 '정면돌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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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내각중심 경제 발전 위해

당과 군이 장악한 경제 자원 내각으로 돌리는 중

기득권 지키려는 반발 막으려 부패 단속 나선 듯

뉴시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회의가 30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31일 보도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위원장이 1일회의, 2일회의에 이어 보고를 계속했다고 방송했다. 연설에서 김위원장은 이른바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2019.12.3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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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북한이 변하고 있다. 단편적이지만 변화의 징후가 뚜렷하다. 이같은 변화는 북한 체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변화 과정에서 파열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안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강력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정면돌파전'에서 나온다.

정면돌파전은 대외적으로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을 핵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2년간의 대내외 전략을 포기하고 '자력갱생'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새로운 전략'이다.

이 '정면돌파전'에 대해 외부에서는 북한이 과거에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전략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박한 평가가 많았다.

예컨대 김위원장이 2013-2017년 5년 동안 추구했던 '핵·경제 병진노선' 역시 핵무기 개발을 통해 대외적 압력에 맞서고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난을 풀어나간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이래 북한에서는 전에 없던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변화 사례가 적극적인 부정부패 척결 움직임이다.

북한은 지난달 리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교체했다. 조직지도부장은 북한 체제에서 사실상 2인자의 권력을 행사하는 핵심 지위다. 그런 사람이 한 순간에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고 해임됐다.

북한은 해임 사유가 노동당 교육사업에서 발생한 부정부패를 관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전례없이 공개하기까지 했다.

부정부패의 세부 내역까지 공개되진 않았지만 알려진 바로는 노동당이 직영하는 김일성고급당학교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학교 간부들과 교수들이 관행처럼 뇌물을 수수했다고 한다. 이처럼 부패가 뿌리깊은데도 이를 방치한 책임을 물어 조직지도부장을 해임한 것이다.

조직지도부장은 김일성고급당학교의 교장을 겸임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관리책임을 물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지도부장의 막강한 위상을 감안할 때 그의 해임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해서라도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리만건과 함께 해임된 박태덕 당부위원장은 주변 인물들이 부족한 비료를 빼돌려 농장에 팔아먹는 비리를 저지른 것에 책임지고 해임됐다는 소문이 돈다. 이는 1997년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가 공개 처형된 사건을 연상시킨다. 서관히는 처제가 기차 6량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비료를 빼돌려 팔아먹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패혐의로 공개 처형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형 당시 제시된 죄목은 '미 제국주의의 첩자'라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에서 수십만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의 시기였고 식량난에 대해 책임질 희생양이 필요했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한편 이번 사건에 앞서 부정부패를 척결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이뤄진 부서도 있다. 바로 외무성과 당 국제부다.

지난 연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끝난 뒤 발표된 보도문에서 북한은 노동당 각 부서 책임자급의 3분의 2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했다. 당시 당부위원장이자, 국제부장, 정치국원이던 리수용이 해임된 사실이 주목을 끌었다.

리수용은 김위원장이 형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에서 교육받을 당시 스위스대사로 있으면서 이들을 보살핀 사람이다. 최고권력자의 자식들을 그것도 북한이 아닌 외국에서 보호하는 일을 담당한 리수용은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크게 신뢰를 받았던 인물이다. 덕분에 리수용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래 승승장구하면서 외교부장, 국제부장, 부위원장, 정치국원 등 핵심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사람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임하는 한편 외무성과 국제부 간부들을 대거 교체했다. 리수용이 81세의 고령이라는 점에서 퇴진할 때가 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강한 특권을 누리면서 오래도록 외교관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리수용의 일가가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실이 밝혀져 퇴진시켰다는 설이 있다. 리수용은 서방에 김씨 일가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같은 배경 덕분에 리수용은 리만건이나 박태성처럼 공개 해임되지 않고 노동당 간부 전체에 대한 대대적 인사에 포함시켜 퇴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리수용 퇴진과 동시에 리용호 외교부장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리선권은 군출신 강성 인물이며 외교관으로 근무한 경력은 전혀 없다.

리수용과 리용호의 전격 교체는 말그대로 충격적 조치였다. 김위원장이 외무성 사람들 전체를 불신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위해 리선권을 앉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리선권이 외무성으로 간 뒤에는 김계관 고문, 최선희 제1부상 등 지난 연말까지 북한의 대외 입장 발표에 자주 등장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이른바 '사상투쟁'을 거치고 있거나 일부 숙청된 사람들도 있울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김위원장에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밝히는 담화문을 김여정이 발표할 정도로 외무성은 '초토화'됐다. 예전이라면 김계관 또는 최선희가 나설만한 사안이었다.

부정부패 척결 움직임은 군부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DAILY NK'는 지난 25일 김위원장이 군부를 시찰하면서 군이 관리하는 경작지를 내각과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하고 김위원장의 이같은 지시에서 군부내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조치들이 이어지는 배경에 바로 '정면돌파전'이 있다.

김위원장은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대내적으로 내각에 모든 경제권력을 몰아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 경제가 당과 군 등 힘있는 특수기관들에 의해 장악돼 인민경제를 담당하는 내각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해온 체제를 개혁하겠다는 의미였다.

북한 경제에서 군은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당이 20~30%를 차지하며 내각이 운영하는 인민경제는 2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구조로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내각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 경제가 이런 구조가 된 것은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막대한 비자금을 가지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력을 키우던 김정일은 비자금의 출처로 삼기 위해 각 권력기관이 직접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했다. 이것이 과도해지면서 노동당이나 군에 비해 힘이 약한 내각이 담당하는 경제단위들은 전체 경제의 5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말이 5분의 1이지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평가마저 있을 정도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자신의 트레이트마크로 삼아 '인민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는 영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 절실하다.

이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시도하는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시도하다가 실패한 끝에 제시한 것이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부흥을 달성하겠다는 '정면돌파전'이다.

그런데 내각이 장악한 경제단위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경제구조를 개혁하지 않는한 '정면돌파전'이 성과를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김위원장은 당과 군의 경제단위를 내각에 돌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당과 군의 핵심 세력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대대적인 인사조치와 함께 부정부패 단속을 부각하는 셈이다.

김위원장의 '정면돌파전'이 과연 북한 경제를 특권층의 손아귀에서 내각으로 이관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가 올 한해 북한 정세를 파악하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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