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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우린 그저 티끌, 겸허히 공존하고 담대히 진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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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90년 2월 1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의 모습. 오른손 손바닥 위의 아주 작은 하얀 점이 지구다. 칼세이건은 이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창백한 푸른 점 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사진 제공 =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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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부터 인류 너머의 지성을 찾아 헤맨 이들이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성간 메시지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사랑에 빠진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다. 1980년대 세계적인 히트 TV 시리즈 '코스모스'를 남기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지만, 부인은 과업을 잇고 있다. 올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세 번째 시즌 '가능한 세계들'의 제작을 이끈 드루얀은 방송에서 온전히 담지 못한 이야기를 불멸의 고전이 된 '코스모스'의 후속작으로 묶어냈다.

자신을 "과학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수렵 채집인"이라고 소개하는 드루얀은 세이건과 함께 간직한 소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1939년 5세의 세이건은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과학이 주는 낭만과 경이를 접한 뒤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박람회는 빈민가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컴퓨터·로봇이 가득한 미래 도시를 상상했고, 이곳에서 아인슈타인은 과학이 풀어야 할 과제를 연설했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세계는 불과 몇 달 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있었고, 전 세계는 여전히 대공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이 어두운 심연 속에서 소년은 미래를 엿보았다. 과학이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높은 벽을 무너뜨리고, 과학의 언어를 평범한 언어로 바꾸는 일. 이것은 세이건이 평생에 걸쳐 매달린 과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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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 한 번 '상상의 우주선'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우주의 나이에 대한 최신 정보는 유럽우주국(ESA) 플랑크 위성이 알아냈다. 빅뱅으로부터 겨우 38만년 흐른 시점이었을 때 처음 방출된 빛을 꼼꼼하게 측정해 우주의 나이가 138억2000만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1억년 더 많은 숫자였다.

이 우주의 시간을 1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포유류가 처음 출현한 날은 12월 26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2월 31일 저녁 7시께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척인 보노보, 침팬지와 진화의 길에서 갈라졌다. 왜 인간만이 약 50억종의 생물 중에서 문명을 건설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생명체로 진화했을까. 약 700만년 전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세포 속 30억개의 염기쌍이 발판이 돼 비비 꼬인 사다리를 이룬 이중나선 DNA에는 암호화된 메시지가 간직돼 있다. 원자 13개로 구성된 사다리 발판 중 딱 하나에 돌연변이가 일어났고, 우리 종을 바꿨다. 호모사피엔스는 수렵 채집을 하는 대신 땅에 먹을거리를 심고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정착해 실내에서 살게 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영영 달라졌다. 농업혁명은 모든 혁명의 어머니였다.

우주력의 자정 전 20초쯤 되는 순간 터키 아나톨리아 평원에 최초의 도시 차탈회위크가 세워졌다. 도시는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생각이 교환되도록 했고, 새로운 생각의 인큐베이터가 됐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조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 아닌 다른 세계의 존재를 선언했다. 얼마 뒤 암스테르담에서는 렌즈 1개를 써서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렌즈 2개를 써서 별, 행성, 위성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그는 토성의 고리가 토성에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의 후손인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인류가 가장 가까운 별로 처음 정찰을 떠나게 될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 약 20년 뒤 레이저 빛을 돛에 받아서 움직일 1000대의 성간 우주선 함대가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무게가 1g에 불과하고 크기가 콩알만 하지만 이 속에는 보이저호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 우주선은 40년 전 발사된 보이저 1호를 나흘 만에 앞질러 시속 1억6000만㎞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 지구와 가장 가까운 이웃 행성계인 켄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에 20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물과 생명이 있을지 모르는 이 행성의 이야기는 약 40년 뒤 지구에 도달할 것이다. 저자는 이 영웅적인 탐구자들 이야기가 인류를 '땅과 바다와 하늘'에 매인 처지에서 벗어날 능력을 입증할 것이라 희망을 품는다.

13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이어지는 이 책은 분자와 바이러스라는 소우주부터 남세균과 삼엽충 등 사라진 생명들의 이야기, 인간 속 우주 뇌과학까지 다채로운 과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과학사의 잊힌 영웅들을 찾아나서는 지점이다. 아폴로 계획이 세워지기 50여 년 전에 달 탐사 상세 계획을 만들어낸 유리 콘드라튜크, 벌들의 언어 체계를 분석해 인간이 아닌 지적 생명체와의 첫 만남을 가능케 한 카를 폰 프리슈, 80만명이 굶어 죽어가는 포위된 도시에서 식물의 씨앗을 지켜낸 니콜라이 바빌로프 같은 과학의 순교자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나긴 여행의 종착점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다. 2034년 핵융합 발전으로 물 한 티스푼이 파리 전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2035년 고래들의 노래가 번역되며, 2051년 화성에 100만번째 나무를 심는 공상. 이 공상의 전제조건은 '인류세'에 우리가 대멸종을 겪지 않는 것에 있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할 일은 다만 '창백한 푸른 점'의 교훈을 직시하는 일이다. 드루얀은 이렇게 말한다. "창백한 푸른 점은 근본주의자, 국가주의자, 군국주의자, 오염자를 말없이 질책한다. 우리 행성과 그 행성이 이 방대하고 차가운 어둠 속에서 지탱하는 생명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 모든 이들을 질책한다. 이 과학적 성취의 더 깊은 의미를 외면할 도리는 없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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