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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주말에 뭐 볼까] 둥근 공 하나가 무너뜨린 계급의 철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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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서 키네워드(가운데 에드워드 홀크로프트)는 귀족 사립학교 이튼스쿨 출신들이 모인 축구팀 `올드 이토니언 FC`의 주축 축구선수다. 그는 귀족적이면서, 노동자의 축구열정을 이해하는 휴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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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디 위 공 하나에 인류의 절반이 넘는 40억명이 열광한다. 골 네트를 뒤흔드는 구(球)의 궤적에 인간의 감정선 역시 희비를 오간다. 세계 국기(國技)는 제각각이지만, 인류 최고의 스포츠는 단 하나, 축구다.

예술로 통하는 현대 축구가 그 시작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 축구가 태동하던 1800년대 후반 잉글랜드에서 축구는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주 6일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찌든 노동자 계급은 평평한 잔디에서조차 귀족들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다. 좋은 음식에, 질 좋은 와인을 즐기는 귀족들은 축구 트로피마저 독식했다. 잉글랜드 FA컵 우승은 늘 귀족 사립학교 차지였다. 1883년 3월 31일.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잉글리시 게임'은 1883년 잉글랜드 FA컵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축구 경기를 씨줄로, 귀족과 노동자의 계급갈등을 날줄로 엮어낸다. 세계 최초 프로축구 선수 퍼거스 수터와 귀족 출신 축구선수 아서 키니어드를 축으로 움직인다.

퍼거스는 노동자 도시 다웬의 축구팀 다웬FC에 친구 조니 러브와 함께 입단한다. 다웬FC 구단주가 스코틀랜드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둘을 직접 찾아 뒷돈을 주고 영입했다. 당시 돈을 받고 축구 경기에 뛰는 것은 불법이었다. 축구 기득권 철옹성 앞에서, 퍼거스는 축구만이 희망인 노동자 계급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다.

은행가 집안의 장남이자, 귀족인 아서 키니워드는 축구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젠틀맨' 중 하나다. 유럽 명문 사립학교 이튼스쿨 출신으로 동문을 중심으로 한 '올드 이토니언FC'의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한다.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 FA(Football Association)를 설립해 축구 규칙을 통일하고 컵 대회를 만든 주역도 바로 '올드 이토니언'이다.

노동자 퍼거스와 귀족 은행가 아서의 한판 승부가 불을 뿜는다. 전략·전술의 부재 속에 선수 전원이 공을 쫓아 떼를 지어 움직인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이날의 경기는 축구라기보다는, 패거리 떼 싸움에 가깝다. 축구장이 하나의 전장으로 전락한 곳에서 퍼거스와 아서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결과는 5대5. 숫자가 증명하듯 치열한 무승부였다.

'잉글리시 게임'의 미덕은 축구 경기의 스펙터클보다는 캐릭터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연출에 있다. '귀족은 악, 노동자는 선'이라는 도식화를 거부하자, 플롯은 더욱 탄탄해진다.

'잉글리시 게임'의 결과는 이미 축구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1883년 3월 31일. 노동자 계급이 최초로 우승컵을 차지한 날. 축구는 비로소 세계인의 것이 됐다. 별점★★★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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