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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준희 대표 "이해못할 쓰레기집, 도와달라는 신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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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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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집'을 청소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을 토했어요.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그보다 돈이 더 무섭더군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6년 청소회사를 창업한 이준희 버틀러 대표(38)는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집을 처음 청소하러 갔을 때를 잊지 못한다. 무릎까지 쓰레기가 가득 차 발 디딜 곳 없는 집에서 바퀴벌레가 집 안 곳곳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토하고 청소하길 수차례, 두둑해진 지갑을 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남편을 기다리는 만삭의 아내를 볼 생각에서다.

"7년간 보안업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월급을 받아도 계속 마이너스 인생이었죠. 임신한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니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한번 사는 인생인데 도전해보고 죽자는 심정으로 회사를 그만뒀어요. 마침 지인이 청소회사를 차렸는데 벌이가 좋다고해 이거다 싶었죠." 지난 24일 서울 마곡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에게 창업 계기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당시 청소업계에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막 도입되고 있었다. 알음알음 전단지를 보거나 주변 추천으로 청소업체를 구하던 게 온라인으로 예약해 청소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표는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300만원을 들여 청소 교육을 받았다. 2016년 9월 그는 친구와 함께 단돈 500만원을 가지고 이사·입주청소, 쓰레기 집 청소 등 전문 청소회사인 '크린몬스터(현 버틀러)'를 차렸다. 창업 후 석 달 동안은 한 달에 100만원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용인의 한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집을 청소해줄 수 있겠냐고 말이다. "집 안에 온통 쓰레기가 가득했고 고양이 똥이 사방에 있었어요. 침대를 들추면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집 안 곳곳에 썩은 고양이 사료가 있었어요. 처음엔 그 집에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어요." 이 집은 이 대표가 특수청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3년 반 동안 100곳 이상의 '쓰레기 집'을 청소한 이 대표는 "경험상 90% 이상이 20·30대 젊은 사람들이었다"며 "대부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80% 이상이 무기력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소 의뢰도 전화보다는 문자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의뢰인 10명 중 9명은 청소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쓰레기 집이나 화재 현장, 사건사고 현장을 치우는 일뿐만 아니라 이사·입주 청소도 한다. 젊은 청년들이 청소하러 가면 대부분 놀라며 거부 반응을 보이지만 청소 후 만족도는 누구보다 높다. 이 대표는 "특수 청소는 힘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젊은 청년들에게 더 적합한 측면이 있다"며 "처음엔 꼼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정적이었지만 청소가 끝나면 대부분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청소 업계에서는 이사철인 봄이 성수기지만 코로나19로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청소하러 다니며 매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이를 홍보용 영상으로 제작하면 좋겠다 싶어 2년 전 유튜브 '클린어벤져스'도 시작했다. 현재 7만여 명이 구독 중이다. 헝그리 정신으로 시작해 12명의 직원을 이끄는 이 대표는 지난 2월부터 '헬프 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울증이 있거나 몸이 힘들어 '쓰레기 집'을 치우지 못하는 가구를 방문해서 무료로 청소해 주는 프로젝트다. 유튜브로 사연 신청을 받아 한 달에 두 가구를 선정해 '클린어벤져스'가 출동한다. 이 대표는 "돈이 많아 돈을 기부하면 좋겠지만 돈이 없으니 우리가 가진 노동력을 기부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약자 편에 서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사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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