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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그림 책]맑게 빛나던,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유리구슬 같았던 유년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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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이나영 글·유경화 그림

문학동네 | 152쪽 | 1만1500원

경향신문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시간 가게>를 쓴 이나영 작가의 신작이다. ‘블루마블’을 포함해 여섯 편의 글을 모았다. ‘블루마블’은 극과 극의 두 친구 혜나와 은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이야기다. 주변에 친구가 끊이지 않는 혜나와 가까워지고 싶은 ‘나’는 혜나의 부탁은 무엇이든 들어준다. 하지만 은서는 다르다. 같이 놀자는 혜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한다. 5학년 2학기에 전학 온 은서는 낯선 환경에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미술시간엔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투표로 가장 잘된 작품을 한 편 골라 교실 뒤에 전시한다. 1등은 늘 혜나 차지였다. 혜나는 유명 화가 선생님에게 특별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나’는 말한다. “그림 도구도, 완성된 그림도 우리들과는 급이 달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파리의 에펠탑을 주제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 중 은서의 작품이 1등으로 선정된다.

혜나와 함께 은서의 집을 찾은 ‘나’는 “파리의 에펠탑, 황금색 등과 어울리는 은서네 예쁜 집”을 상상한다. 은서가 사는 곳은 ‘초원빌라’ 네 글자가 쓰여진 허름한 건물이었다. 은서의 집에 모인 세 아이는 블루마블 게임을 시작한다. 질투에 찬 혜나의 모습은 학교에서 보여주던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다. 육면체의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세 아이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이 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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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던 아이의 설렘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그린 ‘노란 포스트잇’,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재방송처럼 납작한 현실을 자기만의 기쁨으로 채워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봄날의 외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힘차게 밀어붙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담긴 ‘내 남자의 그녀’, 고통의 기억을 가슴에 묻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검정 가방’, 엄마의 맹목적인 욕망으로 인해 가눌 길 없는 슬픔과 답답함에 잠긴 아이를 그려낸 ‘어느 날, 고래가’까지. 부서지기 쉬우면서도 맑게 빛나는 유리구슬 같은 아이들의 심리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나는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힘들고 화가 나도 입을 꼭 다물고 속으로만 끙끙댔어요. (중략) 그런데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나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더라고요. 햇빛 하나 들지 않던 작은 다락방에서도, 좁은 골목길 구석에서도, 부모님이 일하시던 정신없는 시장통에서도 책을 읽고 책 속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내 이야기를 했어요.”

책에 드러난 뛰어난 공감능력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구심점을 가진 이야기에 더해진, 화가 유경화의 선명하고 대담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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