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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삶은 계란틀 등 單목적도구 사지마라, 99.99999%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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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리 도구의 세계' 펴낸 음식평론가 이용재

조선일보

‘조리 도구의 세계’를 펴낸 음식평론가 이용재씨는 “조리 도구의 세계도 일종의 ‘개미지옥’이라 사다 보면 끝이 없다”며 “효율적인 요리를 위해 필요한 핵심 도구는 무엇이며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효율적 답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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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이용재(45)씨가 '조리 도구의 세계'(반비刊)라는 책을 펴냈다. 주방에 갖춰야 할 조리 도구 64가지를 만화가 정이용의 삽화를 곁들여 소개했다. 식당 비평이나 음식·외식 트렌드에 대해 쓰는 음식평론가가 조리 도구에 대한 책을 쓰는 건 드문 일. 이용재씨는 "음식평론가뿐 아니라 국내 음식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중에서 조리 도구에 대한 책을 출간한 건 처음이자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음식평론가가 조리 도구에 대한 책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행복하고 효율적으로 요리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하며, 필요한 도구를 찾았다면 어떤 요령으로 많은 제품 중에서 골라야 하는지에 대한 효율적인 답을 제공하고자 했다. 좁은 공간과 넉넉잖은 예산 안에서 조리 도구를 골라야 하는, 이제 막 자신의 부엌을 꾸려나가는 20~30대 1~2인 가구를 염두에 두고 썼다."

―그런 조언을 담은 가이드북이라면 요리사나 요리연구가가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루 세 끼 대부분을 스스로 해결하는 생활 요리인으로서 항상 주방 도구를 다루고 있다. 아홉 살 때 라면을 처음 끓여 먹었을 때부터 따지면 36년, 군대 다녀와 복학해 자취한 후로만 따져도 20여 년이다. 건축가에서 음식평론가로 전업한 뒤 본격적으로 조리 도구를 모은 것만 따져도 15년이 넘었다. 야금야금 200점 넘는 도구를 사들여 서랍과 천장을 채워왔다.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일하며 살 때는 주말마다 조리 도구 전문 매장을 반나절씩 둘러보고,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외국 특히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백화점 꼭대기 층 가정용품 코너에서 국자부터 간장 통까지 자질구레한 부엌 연장을 집어 돌아왔다. 요리 전문 유료 웹사이트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America's Test Kitchen)의 조리 도구 리뷰, 네이선 미어볼드(Myhrvold)의 요리책 '모더니스트 퀴진' 시리즈 등을 접하며 관련 이론을 보충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쌓인 조리 도구 관련 경험을 아우른 책이다."

―책에서 소개한 64가지 조리 도구를 최대한 줄인다면 몇 가지로 최소한의 주방을 꾸릴 수 있을까.

"식칼, 과도, 도마, 저울, 타이머, 온도계, 계량컵, 국자, 프라이팬(논스틱), 냄비(2L) 이렇게 열 가지면 될 것 같다. 다소 불편하지만 처음에는 부족한 게 낫다. 조금 더 추가한다면 빵칼, 강판, 프라이팬(무쇠 또는 스테인리스)과 냄비(4L) 하나씩 더 정도면 될 것 같다. 한꺼번에 세트로 사면 한두 점만 관심을 주고 나머지에는 무관심해져 사용하지 않게 된다. 요리를 배워 나가면서 하나씩 사 모으는 게 제일 좋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일종의 리워드(보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단 하나의 목적만을 수행하는 단목적 도구는 과감히 외면하라고 단호하게 조언했는데.

"펭귄 배에 난 빈 공간에 달걀을 채워 냄비에 넣을 수 있는 삶은 계란 틀, 아보카도 살을 껍질에서 깨끗하게 발라내는 아보카도 자르개, 마늘 껍질 벗기는 롤러 등 단목적 도구는 대체로 예쁘게 생긴 나머지 충동구매를 부추기지만 99.99999% 확률로 후회를 안긴다. '없으면 이 도구가 맡을 과업이 매우 불편해질 것이다'라는 암시를 주지만 결국 사용하지 않고 공간만 차지한다. 100%가 아닌 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단목적 도구로 소화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목적 도구는 왜 그렇게 예쁠까.

"예쁘지 않으면 사지 않을 테니까."

―본인이 가장 자주 쓰는 조리 도구는.

"식칼이다. 그다음은 집게, 강판, 저울, 계량컵, 온도계 순이다."

―가장 중요한 조리 도구 하나는.

"온도계다. 온도계가 있으면 안전하기도 하지만 조리의 실패도 줄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계량컵·숟가락도 중요하다. 온도계와 계량컵·숟가락 외에 저울, 타이머 등 내가 '주방사우(廚房四友)'라 부르는 계량·측정 도구들은 음식과 조리의 감정적 측면에 큰 가치를 두는 이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딱 떨어지게 식재료의 무게를 측정하는 행위가 음식에서 중요한 정이나 손맛을 떨어뜨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십분 이해하지만, 불상사를 미리 막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준을 잡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나중에 흔히 '손맛'이라고 하는 감을 잡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기능성이나 디자인, 실용성, 가격 등과 상관없이 가장 큰 만족감을 준 조리 도구를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온도계다. 100달러 그러니까 약 12만원 주고 샀다. 다른 조리 도구와 비교하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온도계치고는 고가품이다. 하지만 온도를 매우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측정한다. 스테이크를 굽거나 커피를 내릴 때 온도가 매우 중요한데, 이 온도계는 매우 만족스럽다. 스테이크는 고기가 두꺼워서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데, 이럴 때 온도계가 있으면 아주 확실하게 원하는 굽기 정도로 요리할 수 있다. 온도계를 고깃덩이에 찔러서 섭씨 49도면 레어, 52도면 미디엄, 54도면 미디엄웰던이다. 커피를 내릴 때 물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좋지 않은 잔 맛까지 우러나오고, 너무 낮으면 멀겋다. 90도 안팎이 이상적이다."

―과소평가된 조리 도구도 있을까.

"오븐이다. 국내 대부분 가정에서 냄비 보관함 정도로나 쓰이지만 정말 다목적으로 유용하다. 요즘 엄청나게 인기인 에어프라이어는 사실 원리를 따져보면 컨벡션 오븐(팬이 추가된 오븐. 기존 제품보다 열이 오븐 내부 구석구석 고루 전달되며 조리 시간이 빠름)을 축소해 놓은 것이다. 오븐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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