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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내 가방 안에는 베이징에서 쓸 20개의 '썰매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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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올림픽 2연패 꿈… 스켈레톤 윤성빈

조선일보

2019~2020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본지와 인터뷰한 윤성빈. 편한 스웨터 차림으로 "1년 중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짧은 기간인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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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년 스켈레톤 시즌 마지막 대회인 독일 알텐베르크 세계선수권대회를 막 끝내고 돌아온 윤성빈(26)을 만났다.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6위에 머물렀다. 올 시즌 8개의 월드컵 대회에 나가 1위는 딱 한 번 했다. 2·3·4위를 차지한 대회가 있었고, 6위는 두 번, 7위도 한 번 했다. 썰매는 불모의 나라로 보였던 대한민국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 준 남자. 하지만 그것은 한 번뿐인 행운이었을까. 그의 영광은 계속될 수 있을까. 서울 역삼동에 있는 윤성빈 소속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4년은 올림픽에서 쓸 썰매와 날을 찾기 위한 과정

스켈레톤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썰매에 엎드린 채 1300m 정도 길이의 트랙을 내려와야 하는 동계 스포츠 종목이다. 15~20개에 이르는 곡선도 뚫어내야 한다. 최대 시속은 145㎞에 이른다. 중력의 4~5배에 이르는 속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코피를 흘리는 선수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이후 50년 넘게 올림픽에서 사라졌다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서 부활했다.

여느 동계 스포츠 종목처럼 스켈레톤 역시 키가 크고, 뼈가 굵은 유럽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키 178㎝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한국인이 반란을 일으켰다. 윤성빈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썰매 트랙이 없었다. 이 때문에 체력 훈련만 하다가 해외 대회에 나가 썰매를 타야 했다. 그럼에도 윤성빈은 무섭게 성장했다. 3년 만에 월드컵 대회 2위. 다음 해에는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썰매를 탄 지 6년이 되던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챔피언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지 2년, 성적은 그때 같지 않다.

―전성기가 지난 걸까.

"지금 성적은 큰 의미가 없다. 모두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평창올림픽 때도 그랬다. 직전 해에 거의 완벽해져서 성적이 나왔다. 그때와 같은 시즌은 한 번은 더 올 수 있을 거 같다."

―올 시즌 8개 대회에서 1위는 딱 한 번뿐이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는 아쉬운 성적인데.

"스켈레톤은 선수의 체력이나 정신력 외에도 얼음의 질(質)과 썰매, 그리고 썰매 아래에 있는 두 쪽의 날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종목이다. 어찌 보면 지금은 2년 후 올림픽에 쓸 날과 썰매를 찾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외국에 시합 나가면 썰매 날을 20개씩 갖고 다닌다. 좋은 날을 찾기 위해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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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 /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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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 출전한 윤성빈이 힘차게 스타트하는 모습.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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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썼던 날을 쓰면 되지 않나.

"평창은 홈이었기 때문에 정말 유리했다. 올림픽 준비할 때 평창의 썰매 트랙을 380번 정도 탔다. 타면서 무슨 날이 내 몸에 맞는지, 기록이 잘 나오는지 모든 것을 완벽히 테스트했다. 마지막에는 썰매 날 두 개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하나는 기록은 잘 나오는데, 내 몸에 잘 맞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기록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내 느낌이 좋았다. 결국 느낌 좋고, 몸에 잘 맞는 날을 골라 금메달을 땄다."

―이번 시즌 성적은 들쑥날쑥이다.

"외국에 시합 나가면 썰매 트랙은 전부 다르다. 간혹 홈 텃세가 시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선수들은 공식 시합 전 하루 두 차례씩 사흘 동안 총 6번의 공식 연습을 가진다. 그런데 트랙의 얼음 상태는 날마다 다르다. 첫날 연습에서 얼음 상태를 느끼고 나서 '아, 이렇구나!'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썰매를 세팅하고 내 몸을 적응시킨다. 그런데 둘째 날 얼음 상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마지막 날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외국 선수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반면 주최국 선수는 정식 시합 때 얼음 상태가 어떤지 대충 짐작한다. 그러니 유리할 수밖에. 그걸 극복해야 훌륭한 선수가 된다."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중국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메달리스트가 되려면 어느 대회에 나가더라도 평균 6위권에는 들어올 수 있는 성적이 돼야 한다. 스켈레톤은 대개 세계 랭킹 1~3위끼리 경쟁하고, 4~6위끼리 경쟁한다. 4~6위에 있는 선수가 1~3위로 치고 올라오기는 정말 어렵다."

그는 스켈레톤 매력을 "계속 알아가야 하고,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날과 썰매를 찾아내도, 곧장 외국 선수들이 똑같이 쫓아오는 것이 반복된다. 평창올림픽 때는 절대로 남들이 쫓아올 수 없는 나만의 것을 찾았다. 그런데 올림픽 후 곧바로 찾아내서 또 쫓아오더라. 베이징올림픽을 위해서는 또다시 달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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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썰매 탔을 때는 온몸이 피멍… 지금은 내려오면서 딴생각도

윤성빈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초등학교 시절 고향인 경남 남해군 대표로 도민체전에 나가 육상 단거리·높이뛰기 종목 1등을 했다. 배드민턴 선수도 했고, 고등학교(신림고) 시절에는 농구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림고 체육 교사였던 김영태 현 서울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의 눈에 들었다. 그 길로 스켈레톤에 입문했고, 한국체육대학에 진학했다. 김씨는 "체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경사 15~20도 정도 되는 신림고 앞길 달리기를 시키면 다른 아이들이 성빈이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윤성빈의 성공에 대해 "운동 능력을 타고났는데, 성실하고, 거기다가 운동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스켈레톤은 불모지였다. 시작한 18세도 이른 나이는 아니었는데.

"나는 이런 종목이 있는지 몰랐다. 깊이 생각할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진학을 앞두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여러 가지 고민하던 중에 스켈레톤이 '툭' 치고 들어왔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권하셔서 일단 해보자,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처음 썰매를 탄 날이 기억이 나나.

"국가대표로 뽑히고 나서, 2012년 미국이었다. 썰매 타기 전에는 '이거 너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타보니, 지옥의 입구더라. 지금 내가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천천히 내려가고 있네'라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당시에는 너무 빠르더라. 내려가는 도중에 계속 얼음 벽에 부딪히니까, 무슨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첫해에는 진짜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그냥 멍이 아니라, 정말 시퍼런 멍이 팔과 골반에 있었다."

―그 속도가 두렵지 않은가.

"초반에는 그랬지만, 이제 두려움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가끔 딴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시즌 후반에 가면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썰매를 타다가도 '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그는 자신이 스켈레톤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차분함'을 꼽았다. "스켈레톤은 차분한 사람이 잘 탄다. 시속 140㎞가 넘는 속도로 내려오더라도 방금 내가 한 실수를 얼마나 잘 잊느냐에 따라 승부가 난다. 예를 들어 15개 곡선 코스가 있는데, 7번 코스에서 실수했더라도, 앞으로 8개 코스를 잘 타면 된다. 그런데 실수했던 것을 순간 머리에 담으면 그다음 코스도 계속 실수하면서 벽에 부딪히고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차분한 성격이면 당황하지 않고 실수를 잊고, 곧바로 자기 길을 찾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나는 스켈레톤에 비교적 잘 맞는 거 같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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