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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민에 중독된 유럽, 그들 고향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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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 이후 노동력 부족사태 / 구 식민지인에 대한 부채의식에 / 이민자 무제한 수용… 혼란 자초 / 사회 곳곳 테러·범죄 일상사로 / 대륙 인구는 점점 무슬림이 점령 / 정체성 흔들리는 유럽 실상 해부

세계일보

더글러스 머리/유강은/열린책들/2만5000원


유럽의 죽음/더글러스 머리/유강은/열린책들/2만5000원

‘유럽의 죽음’은 영국 언론인이자 정치 논평가 더글러스 머리의 2017년 화제작 ‘The Strange Death of Europe’ 한국어판으로 최근 출간됐다. 대규모 이민자 유입과 비효율적인 난민 정책으로 위기를 맞은 유럽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럽은 이민에 중독됐고 심지어 자살할 지경”이라는 저자는 “유럽 정치인의 인식 변화가 없으면 유럽 대륙은 이슬람에 점령당할 것이고, 유럽의 정체성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읽는 이에 따라서 저자의 지나친 유럽 중심 역사관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으나 ‘이민자의 용광로’라 불리는 유럽의 위기의 근본을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 위기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을 장려하면서부터다. 유럽의 부족한 노동력은 탈식민화의 결과였고, 이민자들은 유럽으로 속속 몰려 들어왔다. 이민자들은 그 이후 가족을 데려오고 시민권을 얻어 뿌리를 내리고 유럽에 눌러살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서유럽 국가로의 인구 이동은 점차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유럽의 이민자 인구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급증했다. 중동, 북아프리카, 동아시아로부터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마구 몰려들었다. 독일은 그해 한 해 동안 200만명이 넘는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유럽의 이 같은 ‘이민 중독’은 미숙련 분야의 노동력 부족 해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 배경에는 구 식민지인들에 대한 죄의식이 깔렸으며, 좌파 정부 집권 시에는 우호적인 유권자층을 늘리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세계일보

‘유럽의 죽음’은 대규모 이민자 유입과 비효율적인 난민 정책, 무슬림 테러 공격 앞에서 무기력해진 유럽의 실상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사진은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던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스페인 해경에 적발된 뒤 압송되고 있는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 결과, 유럽은 이민자들이 쏟아지면서 ‘세계인 전체의 고향’이 되었지만 정작 유럽인은 고향을 잃게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2017년 영국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이름으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톰도 조지도 아닌 무함마드였다는 사실과 2050년부터는 스웨덴의 이슬람 비중이 20.5%, 오스트리아 15세 이하 50% 이상이 이슬람이란 예측 자료들이 위기감을 보태고 있다. ‘이슬람의 유럽’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

유럽의 어느 정부도 밀려드는 이민자 수를 예측하지 못했고, 이러한 제한 없는 이민 정책은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1989년 소설가 살만 루슈디 살해 경고,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2011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2015년 파리 동시다발 테러, 2017년 웨스트민스터 테러,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등이 대표적이다. 예측불허의 테러와의 전쟁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다 보니 유럽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급증하고 전례 없던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더 이상 세계 전체를 한배에 태울 수 없으며 어느 나라도 국경을 한없이 열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민자 폭발에 따른 유럽의 위기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우리도 외국인 근로자, 결혼 이민자, 불법 체류자 등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명을 넘어서며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달려가고 있다. 2018년 여름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로 들어온 예멘 전쟁 난민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우리나라 역시 이민자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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