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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21세기 호모제노센 기원 추적… 사유의 새 지평 열다 [편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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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찰스 만/최희숙/황소자리/2만5000원


1493/찰스 만/최희숙/황소자리/2만5000원

얼마 전 정세균 국무총리가 좀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던 날, 집에서 점심으로 카레 덮밥을 해 먹었다. 감자와 당근, 양파와 양배추를 썰어 프라이팬에 볶으며 참 아이러니한 감정에 빠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가 속속 빗장을 걸어 잠그고, 개인들은 두 달 가까이 물리적 교류를 차단당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소박하게 차려낸 나의 한 끼 식사야말로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세계화의 현실을 극명하게 증언해 줬다. 안데스를 원산지로 하는 감자와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인 당근, 고대 서아시아에서 자생하던 양파와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양배추. 그리고 인도에서 유래한 카레까지….

이런 뒤섞임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얼마 전 출간한 찰스 만의 저서 ‘1493’은 바로 이 호기심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해 주는 걸작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들이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한 편의 계시록!’이라고 상찬하고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는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호모제노센이란 균질화·획일화된 21세기 인류의 삶, 흔히 우리가 경제 용어로 사용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생태학적 표현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책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인간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지구 생태계의 아수라장을 만들어낸 동물과 식물,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활약을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끌어들여 눈 돌릴 수 없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낸다.

세계일보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 아메리카에는 황열병과 말라리아, 홍역과 독감 같은 감염병이 없었다. 유럽인들이 달고 온 이 몹쓸 감염병 바이러스가 아메리카 원주민 70%를 단기간에 죽였다. 안데스인의 주식이던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덕에 굶주림을 숙명처럼 알고 살던 유럽인들은 비로소 하루 세 번 수저를 들게 됐다. 오랜 세월 지구상 부의 절반 이상을 독점해온 중국 명·청 왕조는 가난한 농부들이 벼 대신 감자와 담배 재배로 갈아타면서 치명적 몰락의 길로 내몰렸다. 진화한 과학기술로 인류는 더 독한 약을 만들어 병원균을 박멸하려 들지만, 인간이 미생물체와의 싸움에서 궁극의 승리를 거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21세기를 활짝 연 세계화의 기저에는 1493년 이후 정신착란처럼 진행된 생태계의 대전환이 있다고.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 역시 호모제노센의 부산물이라고. 나아가 방심할 경우, 균질화된 생태 시스템은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회수할 수도 있다고.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1493’을 읽어보시라.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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