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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독재자 위해 영화 만든 감독, 악마에게 영혼 판 파우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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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망자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김태환 옮김 을유문화사|272쪽|1만3000원

오늘의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소설이다. 지난 2016년 발표돼 헤르만 헤세 문학상을 받았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다룬 주제를 현대사회에 적용했다. 1930년 파시즘이 대중 조작을 위해 영화를 애용하던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그 시대의 영화감독을 악마와 영혼 거래를 한 파우스트에 비유한 소설이다. 문장이 간결해서 단숨에 읽히지만, 문체의 밀도가 높아서 다시 읽게 된다. ‘고집 센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다가 소낙비를 맞아 아스팔트에 짓눌렸다. 아스팔트의 움푹 팬 자리에 물이 가득했고, 그런 물구덩이마다 저녁 때면 식당의 화려한 조명 간판과 초롱들이 고집스럽게 비치고 있었다. 박자도 없이 철벅이는 끝없는 소낙비 줄기에 부서지고 쪼개진 인공의 빛.’ 주인공이 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서술 기법이 영화 카메라를 떠올리게 한다. ‘소나무 숲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산마루들이 시야에 펼쳐졌다. 반쯤 숨겨진 산줄기들이 무한 속으로, 땅안개로 인해 흐릿해진 허공 속으로 사라져 가서, 마치 다채롭게 색을 입힌 투명 종이가 오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소설을 번역한 김태환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그러한 소재를 상당 부분 자의적으로 재조합하고 변형하고 전도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실제 역사와 차이를 생산하고 여기에서 의미를 끌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역사소설의 범주를 벗어난다”며 “역사를 소재로 사용한 몽타주 소설”이라고 풀이했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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