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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특파원 다이어리] 지금 미국은 '6피트 사회'… 산책 길·마트 줄도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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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6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한 수퍼마켓에 들어가기 위해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줄을 서 있는 주민들. 미 보건 당국의 권고대로 6피트(약 1.8m)씩 거리를 두는 것이 요즘 미국의 에티켓이다. /박순찬 특파원


지난 26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새러토가의 주택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당국의 '외출 금지' 명령에 열흘째 집에 갇혀 있다가 큰맘 먹고 운동화를 신고 산책에 나섰다. 건강 유지를 위한 조깅·산책은 예외적으로 허용돼 있다.

산책길을 걷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인도계 중년 여성이 기자를 보더니 갑자기 차도로 내려가 빙 둘러갔다. '인종차별인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한 시간쯤 걸으며 여러 사람과 마주친 뒤에야 깨달았다. 그 사람이 먼저 길을 양보해 '6피트(1.8m) 거리'를 확보해줬다는 것을.

6피트는 미 보건 당국이 제시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칙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다. 잠깐 스쳐가는 산책에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기자도 멀리서 오는 중년 백인 남성을 보고 차도로 먼저 내려섰다. 그가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코로나 시대가 만든 새로운 산책 에티켓이다.

요새 미국은 한마디로 '6피트 사회'다. 대형 마트도 예외가 아니다. 계산원과 얼굴 맞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인(無人) 셀프 계산대에만 유독 손님이 쏠린다. 매장 복도에서 마주친 한 중년 남성은 서로 비킬 곳이 없자 잠시 주춤하더니, 커다란 라면 박스로 얼굴을 가리고 기자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과도하다 싶을 만큼 예민한 미국인들의 반응에는 가짜 뉴스도 한몫한다. 최근 "지인(知人)과 가까이 서서 대화하다 경찰에 적발돼 400달러(약 48만원) 벌금을 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국이 "아직 벌금을 부과한 사례가 없다. 가짜 뉴스"라고 해명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미국의 전반적인 코로나 대응은 한국보다 못 미덥다. 그래도 칭찬하고 싶은 건 '고령자 전용 쇼핑시간(senior shopping hour)' 제도다. 코스트코·월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생필품 사재기 열풍 때문에 생필품을 제때 구하지 못하는 60세 이상 손님들을 위해 개장 직후 한 시간 동안 먼저 쇼핑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25일 오전 새너제이의 타깃 매장에 가보니 직원 두 명이 '고령자 쇼핑 시간'에 방문한 다른 손님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수십명이 발길을 돌렸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훈훈하지만, 사재기가 거의 없는 한국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실리콘밸리=박순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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