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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업들 '공포의 死월'… 신용등급 줄하락, 아무도 회사채 안 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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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제위기]

4월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 6조5000억원, 29년만에 최대규모

기업들 부동산 팔고 전환사채까지 발행해 현금확보 총력전

"정부, 기업에 제때 돈 도는 정책을… 아니면 회사채 대란 온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24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의결했다. 창사 이래 첫 전환사채 발행이다. 현대로템은 이를 조만간 갚아야 하는 단기어음 750억원과 회사채 1100억원 상환에 쓸 계획이다. 보통 대기업 계열사들은 유상증자,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전환사채는 잘 쓰지 않는다. 인수자가 주식으로 전환하면 모기업의 지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이 전환사채 발행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얘기다. 현대로템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지고 회사 신용등급이 'BBB+'로 강등되자 고육지책을 쓴 것이다. 다음 달 1430억원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는 하이트진로도 요즘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이트진로는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지난해 적자 전환해 회사채 발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자금난 때문에 아우성치고 있다. 요즘 각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은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기업들에는 더욱더 '잔인한 4월'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에 돌아오는 국내 회사채는 약 6조5000억원. 통계를 작성한 1991년 이래 역대 4월 만기 물량 중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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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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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줄줄이 다음 달 회사채 만기 폭탄을 앞두고 있다. SK그룹 회사채 상환 물량은 총 6500억원. 롯데그룹의 4월 만기 도래 회사채는 3550억원이다. 신세계·CJ계열사도 각각 2000억원, 2200억원에 달한다. 유통기업들은 온라인 쇼핑의 부상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로 '소비 절벽'까지 맞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비상경영회의를 소집해 "신규 투자 계획 조정을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주문할 정도다. 이마트는 스타필드를 지을 예정이었던 서울 마곡동 부지를 8158억원에 팔며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CJ그룹은 "담보 대출이나 회사채 차환 등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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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자금난은 산업 분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판매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업계는 유동성 위기설에 떨고 있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쌍용차의 유동비율(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갚아야 할 유동부채로 나눈 비율)은 50.4%. 업계에서는 유동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 1년 안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유업계도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수익이 급감한 상황에서 이자 부담이 커져 국제 신용등급이 강등되자 희망퇴직, 임원 연봉 삭감 등 강도 높은 구조 조정 정책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는 대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찬바람이 불면서 자금 시장은 얼어붙은 상태다. 이번 달 회사채 발행에 나선 하나은행(신용등급 AA)과 포스코그룹 계열사 포스파워(AA-)는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20대 그룹의 한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초우량으로 평가받는 AA기업이 회사채 발행 목표액을 못 채운 것은 큰 충격"이라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아무도 회사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 4월 위기설이 계속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정부가 필요한 기업에 돈이 돌도록 정교하고 신속한 금융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마스크 수급 대란처럼 회사채 대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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