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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피해자도 책임 있다”… ‘박사방’ 피해자들 울리는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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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신고해도 구제 못 받아 / 2차 가해 처벌법 필요해” 주장 / 성인 근로자 2000명 설문서도 / “직장 내 성희롱도 2차피해 심각”

세계일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미투 운동’ 등을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에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성희롱에 대해 문제 제기한 피해자들이 조직에서 제대로 구제받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최근에는 ‘n번방’과 ‘박사방’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이어지고 있다.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성인 근로자 2000명(여성 1700명, 남성 300명)을 설문하고 25명을 심층 면담한 ‘성희롱 구제조치 효과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5%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팀은 “(분석 결과) 성희롱을 덮어두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특히 따돌림 등 전형적 2차 피해로 인한 어려움은 사건을 신고·처리한 집단에서 한층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연구책임자인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 내 성희롱 구제 절차가 시작돼도 이후의 2차 피해는 오로지 피해자 개인의 몫”이라며 “성희롱 예방과 고충 처리에서 ‘2차 피해 예방’이 핵심 목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예규나 지침 등에 2차 피해의 구체적 양태와 예시를 추가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업주가 취해야 할 조치도 더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일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는 ‘n번방’ 운영자 ‘갓갓’이나 구속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 등의 범행 수법이 알려지면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겪는 대표적인 2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비난하는 행위다. 일탈 계정을 운영하거나 조건만남 아르바이트 등에 지원한 피해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2차 가해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강도나 살인을 당했을 때는 ‘왜 당했냐’라고 하지 않으면서 유독 여성폭력 문제에서는 피해자를 탓한다”면서 “게다가 미성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장할 뿐이다. 지금은 피해자들의 피해에 집중하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게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에 2차 가해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모인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팀은 “수많은 과거 성범죄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이를 다룰 마땅한 법적 체계가 없다”며 “성범죄의 연속선상으로 봐야 하는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처벌할 법률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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