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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첼로 선율에 장단 맞춘 ‘적벽가’… 고정관념 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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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남산국악당서 공연 여는 소리꾼 박자희 / 판소리 다섯마당 중 가장 어렵지만 / 웅장한 맛에 ‘남성이 어울린다’ 인식 / 소리의 힘 좋은 朴, 과감한 도전 나서 / 발성·사설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 / 삼국지 영웅의 이야기 70분 동안 전달

“국악의 대중화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너무 괜찮은데…. 좋고 나쁘고는 그 다음 문제이고 대중이 일단 들어봐 줬으면 좋겠어요. 국악이 대중을 접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안타까워요.”

여덟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전주도립국악원 판소리 교실에서 국악을 시작한 소리꾼 박자희가 다음 달 새롭게 해석한 ‘적벽가’를 세상에 선보인다. 북 대신 첼로 연주에 장단 맞춰 중원 쟁패를 놓고 다툰 고대 중국 영웅과 민초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국악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책무를 지닌 국립창극단 차세대 명창 출신 젊은 소리꾼의 과감한 시도다.

“문득 ‘적벽’이라면 첼로와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머릿속에서 첼로와 호흡 맞추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첼로 음색이라면 ‘적벽’이 가진 남성적인 측면과 애절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세계일보

판소리 ‘적벽가’ 공연을 앞둔 소리꾼 박자희와 첼리스트 최정욱. 창작 음악 그룹인 ‘오리진얼’에서 함께 작업해 온 두 젊은 음악가는 전통적인 판소리 무대에 등장하는 북 대신 첼로로 강건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음악과 소리로 삼국지 영웅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서상배 선임기자


인터뷰에 앞서 잠깐 엿본 연습 현장에서 미리 본 판소리와 첼로의 만남은 박진감 넘쳤다. 이질감을 느끼기 힘든 조합이었다. 창작 음악 그룹인 ‘오리진얼’에서 함께 작업해 온 첼리스트 최정욱이 클래식 연주의 고전적 선율 대신 만들어낸 투박하면서도 힘있는 장단은 박자희 소리와 어울려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적벽가를 완창하려면 네다섯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이번에는 첼로와 협연하면서 적벽가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만 선정해서 70분 분량으로 구성했습니다.”

형식에서는 북 대신 첼로와 함께하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내용은 고전을 고스란히 담아낼 계획이다. 소리를 섣부르게 고치기보다는 원본이 가진 매력을 충실히 전달하자는 뜻이다. “소리 자체가 가진 매력과 특성을 훼손 없이, 가감하지 않고 있는 것 그대로 해서 첼로 연주만 더해서 관객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요. 원래 있던 소리가 오래된 것이지만 듣는 분들에게는 새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업을 해왔습니다. 있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가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판소리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성이나 사설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가진 것 그대로 잘 지켜서 갖고 가자는 게 제 목표입니다. 판소리가 어렵고 오래됐으니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것도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서도 가장 어렵지만 웅장한 맛을 지닌 작품이다. 그렇다 보니 남성 소리꾼이 어울린다는 인식이나 소리가 넓은 마당 높은 담장을 타고 넘어갈 정도로 힘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박자희에게 어울리는 도전이기도 하다.

적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묻자 동남풍 일으킨 공명을 호위하는 조자룡이 화살을 쏘며 주유 장수의 추적을 피하는 장면을 꼽았다. “십분 정도인 대목인데 사설이 잘 풀어져서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림이 그려지듯 구도가 잘되어 있어요. 사오분 정도 분량으로 줄이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에는 길어도 지루할 틈 없는 장면으로서 첼로랑 주욱 밀고 나갈 생각이에요.”

박자희에게 전주에서 소리를 처음 가르친 이는 명창 이일주이고, 서울로 이사 온 후에는 명창 안숙선을 오랫동안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어릴 때 피아노는 배우기 싫었는데 소리는 너무 재밌었습니다. 안 선생님이 바쁘셔서 선생님 기다리다 졸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작정 노래하는 게 좋았어요. 고등학생 때 잠시 소리가 싫어질 때도 있었어요. 사실 국악에 사람들 관심도 없는데 내가 그걸 해야 하나 싶었는데 결국 다시 판소리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스승이 항상 강조한 건 연습이다. “선생님은 연습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하세요. 자신도 늘 입에서 소리를 중얼중얼 내면서 연습하세요. 원리원칙을 잘 지키셔서 가르칠 때도 단 서너 글자만 틀려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십니다. 진짜 타고나신 분이어서 연습을 게을리했을 수도 있을 텐데 노력파이기도 하셔서 지금도 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모습을 늘 오랫동안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때문에 이미 한 차례 미뤄진 박자희의 이번 공연은 4월 24, 25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혹여 그때까지도 사태가 진정 안 될 경우 네이버 TV 등을 통한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라도 대중을 만날 계획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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