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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설왕설래] 쌀값과 아파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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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부자왕.’ 1637년판 네덜란드 꽃 도록에 나오는 튤립 이름이다. 뿌리 하나 가격이 4200플로린에 달했다. 능숙한 장인이 한 해 동안 버는 돈은 300플로린, 평범한 집 한 채 값은 1200플로린이었다. 우리나라 집값과 비교하면 수억원이 넘는다. ‘튤립 거품(버블)’의 결과다.

가격은 왜 그토록 뛰었을까. 그즈음 시작된 ‘대항해 시대’와 주식회사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유럽 열강은 향료를 찾아 바다 건너 동방으로 향했다. 이전만 해도 아시아의 향료는 중동을 거쳐 이탈리아 상인에 의해 유럽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으로 간 향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1602년 3월 네덜란드 상인조합은 투자금을 모아 동인도회사를 만들었다. 주식회사는 그즈음 탄생한다. 투자금으로 건조한 대형 범선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배가 침몰하면 투자금은 증발한다. 거센 폭풍과 참혹한 역병을 이겨내고 범선이 돌아오는 날에는 수익금이 산처럼 쌓였다. 투자는 일상화하고, 돈은 넘쳐났다. 튤립 거품은 그런 시대의 소산이다.

거품의 발생과 붕괴는 이후 끊임없이 반복됐다. 1990년대 일본 거품경제 붕괴, 90년대말 인터넷 거품 붕괴,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2008년 세계금융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눈길을 사로잡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40년간 강남 아파트 가격은 84배나 뛴 데 반해 쌀값은 3.2배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 강남구 은마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1980년 77만원에서 6469만원으로, 쌀값은 4㎏ 기준으로 3000원에서 950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강남 아파트 값은 거품일까. 그런 주장도 있지만 단정짓기는 어렵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원화 기준 35.5배, 달러화 기준으로는 18.5배 커졌으니. 집 소유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돈은 많아졌다. 쌀값은 왜 뛰지 않은 걸까. 젊은 세대는 하루 쌀밥 한 공기를 먹질 않는다. 쌀 생산성은 높아졌는데.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위기. 제로금리 시대에 돈은 살포되고, 파산의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든다. 가격은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 신은 답을 알고 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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