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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인력도 없이 돈부터 풀라니…코로나 대출 병목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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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신청 최대 800건 몰리는데

담당자 단 2명이 30~40건 처리

“늑장 대출” 불만에 홀짝제 접수

‘선 대출 후 심사’로 절차 간소화

시중은행 지점 활용도 검토할 만

자영업자 정책금융 조직 늘려야

중앙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코로나19 경영애로자금 대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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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인 아내를 두고 집에도 못 가고 일하지만, 고객들은 ‘왜 대출이 빨리 안 나오느냐’고 원성입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저금리 대출인 이른바 ‘코로나 대출’이 실시된 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지난 27일 인천신용보증재단 부천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동규(34) 주임은 “보증심사 인력이 2명에 불과해 하루 최대 처리 건수가 30~40건인데, 접수되는 양은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다. 어떤 날은 800건까지 몰린다”며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빨리 돈부터 풀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 대출’은 지난 달 13일 정부가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위한 경영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현재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을 통한 경영자금 무보증 직접대출(4등급 이하, 1000만원)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신용 1~6등급, 3000만원 한도) ▶소진공 경영안정자금 대출(신용 4등급 이하, 2000만원 한도)로 나뉘어 시행 중이다. 4월부터는 시중은행을 통한 신용대출(신용 1~3등급, 3000만원 한도)이 추가된다.

그동안 가장 신청이 집중된 건 경영안정자금이었다. 대출한도가 7000만원으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27일 2000만원으로 하향조정 발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달 13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지역 신보에 접수된 보증서 신청 건수는 무려 8만8729건에 달했다. 경영안정자금은 소진공에서 소상공인확인서를 받은 뒤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의 보증심사를 거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3단계 과정을 거친다. 신청이 급증하면서 병목현상으로 심사 기간만 2개월 넘게 걸린다.

지역신보의 보증심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부산 신보 관계자는 “현재 7개 지점의 총 보증심사 담당 인력은 28명”이라고 전했다. 지점당 4명꼴이다. 그는 “규정·기준을 다 완화해서 최대한 심사를 하고 있는데도 평상시 인력으로는 업무가 지나치게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3일까지 접수된 보증신청 중 실제 대출까지 이어진 비율은 23.2%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 27일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 방안을 발표했다. 경영자금 무보증 직접대출에 대해 다음달 1일부터 출생연도에 따라 홀짝제를 통해 접수를 받는다는 게 골자다. 홀수 날짜(1·3·5·7·9)는 생년이 홀수, 짝수 날짜(2·4·6·8·0)는 짝수인 사람이 신청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력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저금리 대출의 경우 보증심사 업무를 기업은행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신용등급이 6등급 이상만 대상이다. 기존 대출업무에 보증심사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은행도 업무 부담이 커졌다.

당장 병목현상을 해소할 해법은 없을까. 보증심사 업무를 지역별로 지점을 운영 중인 시중은행에 일부 위탁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지자체와 시중은행의 업무 협력 사례도 있다. 앞서 서울시는 25일부터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자체적으로 5조900억원의 자금을 푼다고 밝히면서 시중은행과 손을 잡았다. 대출심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서울 시내 신한·우리은행 564개 지점에 ‘서울시 민생혁신금융전담창구’를 설치해 전담 직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진공은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고, 지역 신보는 인력이 부족해 심사가 지연된다”며 “지자체가 나서서 시중은행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좀비기업’에 대한 우려도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대규모 자영업자 도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창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기간제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제 지역 신보에선 “퇴직인력이나 기간제 채용을 통해 당장 인력이라도 늘려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단 이 경우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른 정책금융기관 중 인력이 많은 부분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남 교수는 “현재 중소기업보증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나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등의 인력을 활용해 당장 문제가 시급한 서민금융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심사 과정 자체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긴급대출이 가능하다고 하니 당장 생계가 어렵지 않은 이들도 전부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꼭 필요한 사람의 대출이 늦어진다”며 “대출자 선별작업은 좀 뒤로 미룬 뒤 일단은 시장금리로 다 대출해주자”고 제안했다. 하 교수는 “이후에 코로나 피해 여부를 따져서 피해기업은 1.5% 저금리로 대출을 전환하고,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시장금리를 유지하면 피해기업이 아닌 한 굳이 대출을 받지 않게 돼 선별작업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정책금융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남주하 교수는 “현재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집중돼 있는 정책금융 인력을 서민금융진흥원, 신보, 소진공 등 소상공인·자영업자 담당기관으로 재배치하고 규모와 예산을 상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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