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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손성용의 미래를 묻다] 태양광·풍력 발전엔 구원투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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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따라 들쭉날쭉한 발전 출력

에너지 저장 장치와 IT 융합시킨

‘가상 발전소’ 기술로 해결 가능

테슬라, 호주에서 관련 사업 추진



재생에너지의 변신



중앙일보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추앙받기까지 하는 재생에너지는 운영하는 관점에서 볼 때 더럽고 안전하지 않은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더럽다’는 것은 날씨에 따라 출력이 변하는 ‘간헐성’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기존에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전력망에 출력이 들쭉날쭉한 전기를 집어넣음으로 인해 관리를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전력망을 깨끗하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다.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는 기존의 대형 발전소처럼 전문가들이 불철주야 관리하는 자원이 아니기에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예전에는 불이 나면 집 밖에서 전기를 차단하고 불을 끄면 됐으나, 집 안에 태양광 발전기가 있으면 외부 전원을 차단해도 계속 발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에 감전될 수 있다는 새로운 위험이 등장한다. 사회적으로도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려고 나무를 베고 산을 깎는 바람에 산사태 같은 부차적인 안전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화력발전소 더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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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용의 미래를묻다_가상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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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문제는 만일의 경우 발전을 급속하게 차단할 수 있는 기술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다양한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출력의 변동성은 전력 산업에 아직 큰 숙제다. 태양광 발전설비 비용의 하락과 보조금 덕분에 급격하게 태양광이 보급된 미국 캘리포니아는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전력의 14.1%를 태양광으로 생산했으며, 그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중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하기 때문에 한낮에는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태양광이 공급하게 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낮에는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이 큰 도움이 된다. 덕택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몰 때는 수많은 태양광 발전소들이 거의 동시에 발전을 중지하면서 갑자기 전력 생산이 줄어든다. 이렇게 감소하는 양 만큼을 화력발전 같은 전통적인 발전 설비가 급속히 메워줘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메꾸기’ 가동을 위해 많은 화력 발전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가장 큰 명분 중의 하나가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이러한 발전소가 필요하며, 심지어는 더 많이 지어야 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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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묻다


멈춘 태양광 발전을 화력발전이 대체하는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문제다. 화력발전소는 스위치를 켠다고 즉시 가동하지 않는다. 예열 비슷한 게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덩치가 큰 화력발전소일수록 낭비하는 에너지도 많다. 승용차는 급가속과 정지가 쉽지만, 대형 트럭은 급가속과 정지가 어렵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에너지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접목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가상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상발전소는 기존에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던, 가정용 태양광 발전기 같은 소규모 분산 자원을 활용한다. 구름이 잔뜩 낀 날, 집에서 태양광 발전량이 줄면 저장장치에서 전기를 꺼내 출력을 채우고, 발전량이 생각보다 많아지면 저장장치에 넣는 개념을 확장했다. 이를 가구 단위가 아니라 아파트 동·단지 단위, 나아가 행정구역상 동 단위, 구 단위, 광역시, 전국 단위에 적용한 것이 바로 가상발전소다. 집집마다 있는 태양광 발전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여기에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전반적으로 태양광 발전에 급격한 변동이 있을 때, 에너지 저장장치를 이용해 출력을 ‘평탄화’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에 에너지 저장장치를 결합해 날씨에 상관없이 비교적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뭔가 있는 것 같은 표현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원을 통제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빠른 통신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곳저곳의 전기생산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는 ‘출력을 이렇게 바꾸라’고 지시할 수 있는 기술이 이를 가능케 했다.

가상발전소 인프라를 구축하면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에너지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①낮에 생산한 전기를 밤에 사용하는 것을 기본 모델로 하면서 여유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 ②전국에 발전 자원을 가진 소비자끼리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우리 동네 날씨가 흐린 경우 날씨가 맑은 동네에서 생산한 전기를 구매하는 것 ③수많은 태양광 발전 데이터를 모아 훨씬 세부적인 기상 정보를 얻고 발전량 예측을 보다 정확하게 하는 것 ④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언제 어떻게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내보낼 것인지, 누구와 누구를 연결할 것인지를 지능화하는 것 등이다.

가만히 들여다보자. 다시 정리하면 ▶분산된 소형 발전 자원을 연결하고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공유경제를 지원하며 ▶서비스 개선을 위해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고 ▶수많은 자원을 통합 운영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어들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바야흐로 에너지산업도 4차 산업혁명에 첫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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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태양광 발전 주택들을 연결해 발전소처럼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진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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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아니다. 이미 이러한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테슬라는 호주에서 5만 가구에 에너지 저장장치를 설치해 원자력 발전소의 4분의 1 규모인 250㎿짜리 가상발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독일에 등장한 가상 발전소

독일 소넨 커뮤니티는 4만 가구가 넘는 가입자를 기반으로 에너지 공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역시 독일의 가상발전사업자인 슈타트크라프트(Statkraft)와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Next Kraftwerke)는 원전 20기에 해당하는 총 20GW 규모의 발전소들을 네트워크로 엮어 전력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물론 중심은 재생에너지다.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자원만으로 전력소비의 65%를, 2050년까지는 100%를 충당하겠다는 야심 찬 선언을 했다. 호주도 2035년까지 전력소비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목표를 이들이 내건 것은 햇빛과 바람이 풍부하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기도 하지만, 혁신 기술을 확보했기에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의 표명인 동시에 미래 에너지산업을 선점하겠다고 하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 정답 없는 이슈에 발목 잡힌 한국의 미래 에너지

가상 발전 분야에서 세계는 혁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기술적 시범사업을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단계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증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시늉내기 식으로 기술을 테스트하는 정도다. 수만 가구를 엮어 가상발전을 하는 외국에 비하면 미래를 향한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이뿐 아니다. 우리의 에너지 산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논의는 안전을 고려해 원전을 가동할지 말지, 미세먼지 때문에 화력발전소를 가동할지 말지, 여기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릴지 말지 등 정답이 없는 정책적 이슈에 과도하게 매몰돼 있다.

남들은 전기차를 만들고, 자율주행차를 만들고 심지어는 드론을 이용해 ‘플라잉 택시’를 만드는데, 우리는 고속도로를 늘릴지, 국도를 더 늘릴지 논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빠른 보급만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우리 산업의 발전 동력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햇볕 내리쬐는 시간이 짧은 등 운영 환경이 나빠 경쟁력이 없다고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기술 혁신은 세계 어디에 가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약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최초의 5G 통신인프라, 밀집된 환경, 강력한 추진력 등 새로운 에너지 세상으로 가기 위한 우리만의 강점도 있다. 조금만 더 진취적이고 유연해지면 말이다.

■ ◆손성용 교수

가천대 교수이자 스마트그린홈 연구센터장이다. 10여년 간 기업체에서 에너지와 정보기술(IT) 융합 분야 경험을 쌓았다. 현재 가상발전소 연구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KAIST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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