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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조선일보 50년 독자였던 아버지… 산중턱 집엔 배달 안돼 내가 학교 끝나면 도봉산 입구서 신문 받아 가져다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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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선일보] [19] 엄홍길

조선일보

세계 첫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기원하며 - 엄홍길(60) 대장이 2006년 한 행사에서 히말라야 16좌 등정을 다짐하는 모습. 그는 이듬해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했다.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탈 때마다 손에 조선일보를 들고 탄다.

1985년 히말라야 첫 원정 때부터 35년 습관이 됐다. 등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 역시 기내서 가장 먼저 조선일보를 찾아 읽는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코에 와 닿는 인쇄 향이 등정의 피로를 일순간 날려버린다. 가끔은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승무원들이 "고생하셨습니다"라며 인사한다. 이런 날엔 어김없이 신문에 내 기사가 사진과 함께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1988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부터 2007년 로체샤르(8400m)까지 8000m급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座) 등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조선일보는 그 20년 동안 내가 쓴 일기보다 더 압축적인 기사로 나의 여정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해줬다. 2015년 나를 주제로 한 영화 '히말라야' 개봉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사는 내 인생과 역경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산악인의 휴머니즘과 도전의식을 잘 소개해줬다.

조선일보 100년은 고봉을 정복하는 것처럼 신념과 불굴의 정신 없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8000m급 16개 봉우리를 완등하면서 대원과 셰르파 10명을 잃었다. 발목이 180도 꺾이는 고통도 맛봤다. 하지만 결국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상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다음 100년을 기대하는 이유다.

나는 16좌 등정 이후 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에 나서고 있다. 매년 희망원정대를 조직해 산행하고, 대학생 100명과 함께 14박 15일 DMZ평화통일대행진도 펼친다. 조선일보 '통일과 나눔' 재단이 힘을 보태준다. 휴먼재단도 조선일보처럼 100년을 목표로 단단하게 이끌어 가고 싶다.

불현듯 선친 생각이 난다. 조선일보 50년 독자였다. 경남 고성서 서울 도봉산 산 중턱으로 이사 왔을 때 집까지 신문 배달이 안 되던 때였다. 초·중학교 시절 우편배달부가 도봉산 초입 주차장에 신문을 맡겨 놓으면 매일 하굣길에 챙겨 집까지 20분 정도를 내달려 선친께 드렸다. 큰 선물 받은 것처럼 기뻐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엄홍길 산악인·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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