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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단독] "사진 더 보내면 지워줄게" 그 악마, 잡고보니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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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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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25)이 붙잡히면서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는 사이에서도 이같은 범죄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아동·청소년 등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 착취다. 그런데 이런 행각이 친구나 애인 등에 의해서도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 더 보내면 삭제"…잡고 보니 지인



미성년자인 A양는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 등이 게시된 것을 발견했다. 이를 게시한 사람은 음란 동영상을 판매한다는 글과 함께 A양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A양은 이를 삭제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다른 사진과 영상을 추가로 보내면 삭제해주겠다”는 답장을 받았다고 한다.

A양의 사진은 SNS를 통해 온라인상에 무차별 유포됐다. A씨는 가족들과 학교에까지 자신의 신상정보가 담긴 사진이 퍼지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성 착취 영상을 찍어 협박범에게 전송했다고 한다. 이 협박범은 자신이 A씨를 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영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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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경찰 수사를 통해 A씨의 사진을 올리고 협박한 사람은 그의 지인 B양인 것으로 드러났다. B양 역시 미성년자였다. 이 같은 지인을 겨냥한 디지털 성범죄는 신상정보를 안 상태에서 접근한다. SNS 등을 통해 미성년자를 비롯한 다수의 여성에게 고액 아르바이트(알바)를 제안하고 사진과 신상정보를 받은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해 성 착취 영상을 찍게끔 한 조주빈의 방식과 흡사하지만 다른 점이다.



사진 수백장 요구…아청법·협박 등 혐의



경찰 등에 따르면 B양은 A양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나체 사진을 우연히 발견해 이를 자신에게 전송한 뒤 익명으로 가입한 SNS에 올렸다. 이후 B양은 A양을 수차례 협박하면서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한다. A양에게 사진 삭제를 빌미로 성 착취 사진 등을 수백장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은 집 밖으로 나가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B양에게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상 음란물 제작·유포, 협박, 강요 등의 혐의를 적용해 의정부지검에 송치했다. 그러나 B양이 미성년자라 처벌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B양의 남자친구(20대)가 범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경찰 단계에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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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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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더욱 취약…피해자 비난 안돼"



전문가들은 또래 간 디지털 성범죄는 대부분 아는 사람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지인이 꼬투리를 잡아서 협박하고 성 착취를 하는 건 심각한 디지털 성범죄의 유형 중 하나다”며 “미성년인 경우 더욱 취약하다”고 했다. 또 그는 “성범죄 피해자가 문란한 것처럼 평가하고 비난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피해자가 이 같은 협박에 휘둘리지 않고 신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정확한 통계가 없다면서도 지인 사이에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방검찰청 관계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공론화한 이후에도 청소년들이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협박해 사진을 찍게 하고 이를 온라인상에 유포한 뒤 지속적인 협박으로 추가 음란 동영상까지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실제 아는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도 최근 심각한 문제다”고 전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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