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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코로나 전쟁 두달, 이젠 의료진도 위험하다…"공황장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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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정신적 피로도↑…번아웃 호소

“의료진 무너지면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

계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에 의료진이 지쳐가고 있다. 첫 환자가 나온 지 두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4500명 넘는 사람이 치료받고 있으며 매일 100명 안팎의 신규환자가 쏟아진다. 코로나 전투 최일선에서 뛰는 의료진의 번아웃(Burnout·소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짧은 시간 밀려드는 확진자 치료에 매달려야 했던 대구 지역 의료진은 탈진 상태다. 29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대구 지역 누적 환자는 6610명에 달한다. 신천지발 무더기 감염이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든 듯하지만 정신병원 등 고위험 집단에서 환자가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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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마친 의료진이 휴게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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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서영성 원장은 지난달 21일 이 병원이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한달 넘게 강행군 중이다. 감기몸살을 벌써 몇 번 겪었지만, 주말이라고 쉬어본 적이 없다. 서 원장은 “초과근무가 연속되면서 직원들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자칫 주의가 흐트러져 (의료진)감염 위험이 커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극심한 업무 피로도와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일도 생긴다. 서 원장은 “업무 강도로 인한 건강 상태를 이유로 그만두는 의료진도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는 현재 350명 넘는 코로나 환자가 입원해있다.



봉사자 떠난 자리 채워야..코피 쏟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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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음압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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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왔던 자원봉사자가 하나둘 빠지면서 업무가 가중되기도 한다. 이 병원에서 열흘 넘게 의료봉사 중인 대한의사협회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발생하다 보니 외부에서 공급되는 의료인력이 갈수록 줄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선생님들이 환자를 나눠 온전히 감당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구의료원 소속 한 간호사는 사흘간 코피를 쏟기도 했다. 최근까지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자원봉사한 김미래 간호사는 “파견자와 달리 병원 소속의 의료진은 몇 달째 긴장 속에서 근무를 이어가다 보니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육체적으로 고단한 것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견뎌야 할 것도 많다. 처음보다 나아졌지만, 감염 걱정이 여전하다. 김미래 간호사는 “환자를 가장 밀접한 상태에서 접촉하는 자체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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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비상대책본부 응원 메시지 앞 에서 근무를 마친 의료진이 취재진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국에서 날아든 메시지에는 어린이집 꼬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 공무원 등을 응원하고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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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의료진 감염 소식도 잇따른다. 대구지역 의료진 가운데 감염사례는 의사(14명)와 간호사(56명) 등 121명에 달한다. 34명은 신천지 신도로 확인됐지만 나머지는 환자와의 접촉 과정에서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29일 브리핑에서 “의료종사자들은 의심환자 진료 과정에서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위험군”이라고 말했다.



자녀와 영상통화 하며 울기도



가족과 생이별 중인 상황도 어려움을 더한다. 대구 동산병원의 정인자 간호부장은 “젊은 간호사가 많다 보니 가족과 헤어져 있는 걸 제일 힘들어한다. 영상통화에서 아이들이 ‘엄마, 언제 오냐’고 물으면 우는 간호사가 많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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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별관 비상대책본부 앞에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벽면 가득 붙어 있다. 전국에서 날아든 메시지에는 어린이집 꼬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 공무원 등을 응원하고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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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에서 소리 없이 분투 중인 담당 공무원들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은 “병원의 경우 교체 인력들이 있고 타 지역에서 봉사 인력도 지원되지만 보건소는 자체 인력과 타 부서 공무원들로 일하다 보니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고 말했다. 대구 지역 한 보건소에서 전화 상담 업무를 총괄하는 간호직 공무원 A씨도 암 투병 상황에서 연일 격무에 시달린다. A씨는 “1인당 하루 80~90통씩 전화를 받는다. 하소연하거나 화내는 사람도 많다”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약까지 먹는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자원, 방역의 기본”



지난 27일 대한의사협회는 긴급 권고문을 통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심장근육의 이상이 발생해 제 기능을 잃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의료기관과 의료진은 이런 과부하 상태에 놓여있다”며 “번아웃으로 인해 이들이 제 기능을 못 하면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 관계자는 “의료진은 자원이다. 의료진을 구하는 게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방역의 가장 기본으로 삼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의료진이 무너지면 의료시스템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황수연·정종훈 기자, 대구=김정석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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