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9 (수)

"홀짝제 못 기다려" 계속 줄서는 소상공인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30일에도 줄서기 계속

서류 간소화 부작용으로 1인당 대기 늘어날 수도

신용등급 따른 지원 창구 분리에도 당분간 혼란 일 듯

조선일보

소상공인 긴급 대출 접수가 시작된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소상공인 진흥공단 서울동부센터에서 대출 신청을 하려는 소상공인들이 비상 계단까지 길게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가 돈이 급한데…1일까지 집에 앉아 기다릴 수 없어 나왔지요.”
30일 아침에도 소상공인들의 줄서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와 구로, 목동 일대를 담당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서부센터에는 오전 7시30분께 이미 30명이 넘는 소상공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정부는 지난 27일 소상공인 줄서기를 막기 위해 대출 창구를 확대하는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대책의 핵심 내용인 은행을 통한 자금 지원이 4월 1일에나 시작되기 때문에 불안한 소상공인들이 계속 기존 대출 창구인 소진공 센터를 찾아오는 것이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51)씨는 “1일까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면서 “혹시라도 오늘 접수가 되면 며칠이라도 일찍 대출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소진공 센터를) 찾았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도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동안 소상공인과 일선 창구의 혼선이 커질 것이라는 이유다.

우선 정부의 대출 서류 간소화 조치가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란 지적이다. 소상공인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기존 7종에서 3종(사업자등록증, 임대차계약서, 통장 사본)으로 줄어들었지만, 필요한 전체 서류는 전혀 줄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머지 4종의 서류를 창구에서 정부 행정 전산망에 접속해 직접 확인 처리해야 한다.

서울의 한 소진공 센터 직원은 “서류 작업이 크게 늘면서 한 사람당 1시간가량 소요됐던 대출 신청 접수가 1시간 20~30분 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하루 30~40여명 처리 가능했던 직접 대출 신청 접수가 20~30명 정도로 줄어들면서 소상공인들의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대출신청 사전 예약도 불만을 낳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소진공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현장에서 줄서는 대신 컴퓨터 앞에서 줄 서게 생겼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소진공은 같은 시간에 접속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마다 신청 시간을 다르게 해놨다. 하지만 시간 안내가 잘못됐거나, 정해진 시간에 들어가 보니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마감이 되었더란 것이다.

소진공 게시판에 글을 올린 김모씨는 “센터에 갔더니 번호표는 마감, 줄은 수십 미터가 섰고, 인터넷 예약을 하라 해 정해진 시간(오전 9시)부터 접속했더니 여기도 클릭 경쟁을 해야 한다”도 토로했다.

신용등급에 따라 자금 지원 창구를 달리한 것도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1~3등급 고(高)신용자는 시중은행에서, 4~6등급 중(中)신용자는 기업은행에서, 7등급 이하 저(低)신용자는 전국 소진공 센터를 통해 소상공인 대출 신청을 받는다. 하지만 상당수의 소상공인, 특히 중장년 소상공인들은 자신의 신용등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www.credit.co.kr)을 통해 확인한 신용등급이 은행의 자체 신용등급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은행마다 신용등급 평가 방법과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신용등급 3등급인 고신용자가 국민은행에서는 4등급의 중신용자 판정을 받아 대출 지원을 못 받는 헛걸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이 급한 자영업자 상당수가 신용등급이 좋지 못하다는 점도 ‘대출 줄서기’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2018년 소상공인금융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소상공인 중 신용등급이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는 49%다.

은행권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도 8%에 이른다. 전체 소상공인이 630만명임을 감안하면, 5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은 계속 소진공 센터를 찾는 수 밖엔 없다. 소진공 관계자는 “금새 줄이 줄어들기는 힘들겠지만, 계속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철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