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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글로벌뷰]'부활절 회복' 주장하던 트럼프 한 발 물러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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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경제 정상화 주장하던 트럼프

주말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발표

가파른 美확산세, 전문가 비판 고려한 듯

‘부활절(4월12일) 이전 경제 정상화’를 주장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섰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지침을 4월말까지 한 달 연장하기로 한 것이죠.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연말 대선 승리를 위해 경제 침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는 거센 비판 여론에 일단 꼬리를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만료시한을 하루 앞둔 2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 치명률이 2주 이내에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확산을 늦추기 위해 지침을 4월 30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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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9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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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닷새 전인 지난 24일(현지시각)까지만 해도 “나는 부활절까지 이 나라를 다시 열고 싶다”며 “부활절에 전국에 (신도로) 가득 찬 교회를 보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는 (미국을 정상으로 돌리는) 부활절을 지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고 했고, 전날에도 “미국은 조만간 '영업 재개'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제어’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금세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부 평가와 비난,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마이웨이’를 고수하던 그의 평소 모습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전쟁에서 이기기도 전에 승리를 선언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것”이라며 "이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손실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한 데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미국 상황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참모들로부터 상세 브리핑을 받았겠죠. 현재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누적 확진자 수는 14만명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9만8000여명)와 중국(8만2000여명)보다 약 5만~6만명이나 많습니다. 인구 100만명당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9위로 내려가지만 의료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치명률은 계속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섣불리 경제 정상화에 나섰다가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활동 회복 시기가 상당히 늦춰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6월 1일까지 잘 회복되는 경로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트럼프의 말이 얼마나 확실한 근거를 바탕에 두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활절 경제 정상화’를 언급했던 지난 24일 '왜 하필 부활절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저 (부활절이) 아름다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위대한 날이다"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그저 '감(感)'으로 한 말이었죠. 시장에는 ‘회복 경로’로의 진입이 트럼프 공언대로 2개월 내에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입니다. 미국 전체 코로나 누적 확진자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뉴욕주에서 확진자수의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일간 신규 확진자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6월1일’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둔 발언이라기 보다는 “그때까지도 ‘회복 경로’에 진입하지 못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절박함 속에 임의로 설정한 날짜’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더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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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발언중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연구소(NIADI) 소장을 바라보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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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 뒤로 물러선 데는 보건 전문가들과 갈등을 빚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겁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주저 없이 반대 의견을 얘기하고 있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연구소(NIADI) 소장은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브리핑에서 "감염자 수가 확 늘고 있는 지역에서 지침을 완화할 수는 없다"며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지역이더라도 완화를 검토하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지금은 정보가 없다"고 했습니다. 앤서니 소장이 이 말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옆에 서 있었습니다. 앤서니 소장은 “미국에서 사망자가 10만~2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앤서니 소장은 1984년부터 37년째 NIADI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밖에 톰 잉글즈비 미 존스홉킨스대학 보건안전센터장도 트위터에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를 끝내자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한다"며 "코로나가 더 널리, 더 빨리, 더 지독하게 퍼져 한 해에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썼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한 강연에서 "미국은 셧다운(가동 중단) 없이 코로나를 통제할 기회를 놓쳤다"며 "셧다운은 6~10주 계속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전문가들과의 계속되는 의견 대립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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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현지시각) 한산한 미국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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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날은 언제쯤일까요. KB증권 김일혁 연구원에 따르면 '공공정책연구를 위한 미국기업연구소'(AEI)는 경제활동 재개와 관련한 총 4단계의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①최소 2주(잠복기 1회를 의미) 동안 지속적으로 신규 확진자수가 감소하고, ②지역 병원들이 모든 입원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고, ③코로나 증상이 있는 모든 사람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④확진자와 확진자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2단계(경제활동 재개)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1단계의 ①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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