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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죽은 자가 산 자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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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
2020년 올 해는 청산리·봉오동 전투 100주년이고, 6·25전쟁 70주년이자 4·19혁명 6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보훈의 역사는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가치와 이를 통해 시민적, 평화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의미를 짚어보고자 <프레시안>은 보훈교육연구원과 함께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보훈의 역사, 사회적 의의, 평화지향성 등을 사회적으로 함께 생각해 보고 방향을 정립해 보는 기회의 장을 갖고자 합니다. 편집자.

고대사회에서 거의 모든 민족이 그 집단의 생사가 달린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집단 자체가 숭배하고 있는 신(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신에게 제사하는 일은 그 집단의 최고 우두머리가 주재하며 제사장은 정치의 수장까지 거의 겸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인 것이다. 역대 왕조가 행했던 제천은 당시로서는 국가의 중대한 행사의 하나이며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단순한 제사와는 다르다. 즉, 국가의 정통성과 통치자의 합법성을 하늘로부터 부여받거나 이미 부여받은 권력을 백성들에게 확인시켜주는 통치차원의 의례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제례 때 임금, 왕세자, 여러 제관, 문무백관이 참석하여 역대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제례의식을 통해서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에 선거에 의해 선출 또는 임명된 공직자가 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정통성을 재확인 받고 있다. 현재의 국립묘지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하신 분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의 장소로서 애국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공간이다.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희생정신을 이어받고자 국민적 공간으로 국립묘지를 건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1955년 ‘국군묘지’로 출발하여 이후 ‘국립묘지령’이 제정되었고 현재의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안장대상자를 군인에서 국가유공자 등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자로 확대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크게 현충원, 호국원, 민주묘지, 신암선열공원이 있으며 여기에 안장된 기수는 약 28만여 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부산의 UN묘지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국립묘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14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나라의 대표적인 국립묘지로 프랑스의 빵테옹, 캐나다의 비치우드 국립묘지, 대만의 충렬사, 그리고 영연방묘지가 있다. 특히 영연방묘지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위한 묘지로 154개국 2,300개 지역에 흩어져 있으며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인도 등 6개 국가에서 170만 기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차원에서 운영하는 국립묘지는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에서도 정치적으로 주는 메시지의 의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동작동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현충원은 4명의 역대 대통령이 안장되어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국립묘지와 달리 많은 정치적 측면에서 많은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국가지도자나 장관, 정치인들이나 저명도가 있는 인물들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 상징성이 있는 현충원을 방문하고 있다. 주로 방문하는 시기를 살펴보면 새로운 직위에 취임했을 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새해에 방문한다. 그리고 선거철에도 방문을 하게 되는데 국가를 위해 희생과 공헌한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표시하고 국가의 안녕을 빌면서 정통성을 이어받아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 이외에도 권력자에게서 죽음은 자신이 보유한 권력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굳건히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상징적 동원의 기제로서 국립묘지가 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외국의 국가원수나 주요 외교 사절이 방문할 때도 상징성이 있는 동작동 서울현충원의 국립묘지를 우선적으로 참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외교사절이 상대국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존립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한 분들을 위해 국립묘지를 방문해 참배를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의 국립묘지가 이제는 이데올로기적 당파성에서 벗어나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었지만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한 때 민주화와 정권교체의 국면 속에서 때로는 이념 대립과 갈등이 지금까지도 있어 왔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국립묘지가 통치수단으로서 활용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념의 공방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죽은 자를 놓고 정치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한다. 현충원 안장대상자의 자격조건을 살펴보면 무척 까다롭지만 단순하게 정리하면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 사람은 안장될 수가 없다. 그래서 안장대상자 중 갈등의 한 중간에 있는 인물이 죽으면 안장 조건을 놓고 정치주체 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안장된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안장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만 일부가 사후에 친일 또는 생전의 공적이 허위로 밝혀져 안장 조건이 안 되는 대상자가 있는데 국가적 차원에서 정리하여 국립묘지가 갈등과 분열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국민 통합 기제로 역할을 충실하게 할 날을 기대해 본다.

[이용재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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