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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연합시론] '박사방' 참여 닉네임 1만5천개…일벌백계하고 근절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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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성 착취물을 거래한 'n번방' 사건에 대한 검·경 수사가 진행되면서 범행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조주빈(구속)이 운영한 텔레그램 '박사방'에 참여한 닉네임이 1만5천건에 달하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유료 회원뿐 아니라 관련된 그룹 참여자를 합친 것인데 중복되는 것을 모두 제외한 규모라고 한다. 경찰은 사용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조주빈은 휴대전화를 9대나 사용했는데 경찰은 이 중 7대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마치고 나머지 2대를 분석 중이어서 추가 연루자가 드러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번 사건을 추적해 온 여성단체 등은 '박사방'을 포함해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 곳의 이용자가 모두 26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가담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조주빈이나 '갓갓' 등 성 착취물 공유방 운영에 직접 가담한 인물은 물론 유료 회원 등에 대해서도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성 착취물을 사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파탄 내는 인권유린 행위이자 유사 범죄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조주빈 사례처럼 범행을 주도한 경우 현행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신상 공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가담 정도와 상관없이 대화방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신상을 일괄적으로 공개할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수십만 명의 신상을 공개하다 보면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박사방'에 참여했던 40대 남성이 지난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성 측면에서도 관련 법 조항과 죄질을 세밀하게 따져 합리적 범위에서 공개 대상을 선정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전담기구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 내지 동의를 끌어낸다면 신상 공개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 분노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거세지는 듯하다. 가수 고 구하라 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 사건에서 구 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판사를 n번방 사건에서 제외해달라거나 조주빈과 살해를 모의한 공익근무요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가 모두 40만 명을 넘어섰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 대응의 공백을 지적하고 더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며칠 전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관계 부처는 물론 민간 전문가까지 아우르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거듭 당부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졸속 입법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둔감하다는 비판을 자초했던 국회도 보완 입법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 '디지털 범죄단체 조직죄'를 신설하고 성범죄물이 있는 온라인 채팅방에 입장만 해도 처벌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n번방 사건에 소급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론을 의식해 의욕을 지나치게 앞세워선 곤란하다. 소급입법 등의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늦은 만큼 빈틈이 없도록 훨씬 더 꼼꼼하고 정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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