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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9조원 뿌리는데…소득액·대상자도 못정한채 `졸속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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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 비상경제회의 ◆

매일경제

정부가 전체 9조1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원이 동원되고 한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하는 재난지원금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가족이 대상에 해당되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련되지 않아 혼선이 예상된다. 정부가 현금을 대량 살포한다는 메시지를 총선 전 발표하는 것에 몰두해 '국민의 70%'라는 미숙한 기준선만 합의된 정책을 공개한 탓이다.

정책 집행을 떠맡은 행정부는 시행 예상 시점인 한 달 후까지 전 국민 경제력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렬해 비교하는 전례 없는 조사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제시한 기준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정부는 심한 반발에 부딪힐 전망이다.

정부가 30일 발표한 재난지원금 계획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한 가구가 받을 수 있는 현금성 지원만 최대 320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소득 최하위 계층 4인 가구(부부+자녀 2명)는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과 140만원 규모 소비쿠폰, 아이 2명에 대한 양육비로 지급되는 특별돌봄쿠폰 80만원(1인당 40만원)을 더하면 가구당 지원금은 320만원에 이른다. 여기서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소비쿠폰 수혜 액수가 줄어들고, 건강보험료 감면액도 감소하는 구조다. 소득 하위 40~70% 구간에 해당하는 가구는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에 자녀 수에 따라 특별돌봄쿠폰 80만원만 지급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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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금성 지원 액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1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지급되는 아동수당 성격의 특별돌봄쿠폰, 공공 일자리 종사 노인에게 지급하는 노인일자리쿠폰 등과 중복 지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이 같은 기존 대책 수혜자들을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현재 경제위기가 범국가적 중대한 상황이란 점을 감안해 중복 지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회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려운 계층 중심으로 줄 것이냐, 아니면 그보다 더 범위를 넓힐 것이냐를 놓고 많은 토론 끝에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피해가 일부 하위 계층 또는 저소득 계층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국민의 공통 어려움이라는 점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과연 나는 지원금을 받을 대상인지' 궁금하게 해놓고서는 정작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과 대상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4인 가구 기준 월 712만원 등 '중위소득 150% 이하'가 검토됐으나 전날 당정청 협의를 통해 갑자기 '소득 하위 70%'로 결정됐다. '중위소득 150% 이하'라면 국민의 소득 중앙값을 먼저 구한 뒤 해당 소득의 1.5배를 소득 액수로 산출해 지원 대상을 정하지만 '소득 하위 70%'는 전체 국민을 소득에 따라 줄을 세운 뒤 등수로 하위 70%까지만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국가가 보유한 통계청 통계와 건강보험 등 각종 복지 행정자료를 총동원해도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와 아닌 가구를 정확히 구분해낼 방법이 없다. 전 국민의 소득 수준을 파악해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식을 활용하려면 전 국민의 소득 수준을 새롭게 조사해야 한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의 월 보수액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문제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통계청 자료와 달리 전 국민 자료를 구축해둔 것이 강점이지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소득 수준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직장가입자는 재산을 계산하지 않고 근로소득만 따지는 반면 지역가입자들은 재산을 함께 계산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지역가입자는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할지 기준이 애매하다. 정부는 일단 정책 적용 기준에 자산 기준도 포함시키기로 했지만 이 역시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 어디서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포함시킬지 등에 대한 기준을 하나도 정한 게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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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자료를 살피고 있다. 홍 부총리 왼쪽은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충우 기자]


정부는 "그간의 복지대책들이 소득 '액수'를 기준으로 수립된 반면 이날 발표된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 가운데 수혜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선으로 정한 탓"이라고 해명한다.

기재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 국민 소득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렬해 몇 퍼센트에 지원한다는 방식의 정책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책이 실제 시행되려면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고 국회를 통과하는 등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그 안에 지급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금성 지원을 결정한 이상 지원 대상을 스크리닝하려면 기준과 방법이 기술적으로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며 "차라리 선지급 후정산 방식을 도입해 개인 단위로 일괄 지원하고 내년 초 연말정산과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일부 상위 그룹에 대한 환수를 시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번 대책의 실제 시행 시점은 이르면 5월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4월 15일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21대 국회가 추경을 즉각 통과시킨 후 행정부 준비작업도 모두 마무리돼 곧장 시행되는 것을 가정한 시점이다.

[문재용 기자 / 김연주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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