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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19] 20세기 중반 미국인의 지배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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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흔히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라고 한다. 말끔한 도시 풍경이든 한적한 전원이든 배경에 관계없이 한두 명씩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같이 고립된 채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공황과 전쟁을 거쳐 번영과 발전의 시기를 맞이한 20세기 중반에 미국인들이 느끼는 지배적 감정이 역설적으로 고독이었던 것. 60년 전 그림인데, 재택근무와 자가 격리로 고립이 필수가 된 지금 보니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조선일보

에드워드 호퍼, 소도시의 사무실, 1953년, 캔버스에 유채, 71.1×101.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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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뉴욕에 거주하던 호퍼가 여름을 나곤 하던 매사추세츠주(州)의 소도시 트루로에서 그리기 시작해 뉴욕으로 돌아가 완성했다. 하지만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유리창을 통해 무미건조한 바깥이 내다보이는 이 사무실은 트루로나 뉴욕이 아닌 어디에도 있을 법하다. 햇빛이 넘치게 들어오는데도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는 역시 별다른 특징이 없는 책상 앞에 한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 각도로 남자를 바라보려면 바짝 붙은 옆 건물의 비슷한 사무실에 있어야 할 것이다. 같은 공간 어딘가에는 동료 직원들도 있으련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니 대화도 없고, 그렇다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조용하고 썰렁하기만 한 사무실에 있다가 무심히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나와 같은 이가 건너편에 또 하나 있는 셈이다.

저 남자에게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있었다면 표정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거리가 필수가 된 요즘, 떨어져 있을수록 서로 안부를 살뜰히 챙겨주는 소셜미디어가 더없이 고마울 때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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