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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67]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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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베이징대에서 도가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 교수와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거쳐 지금은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을 맡고 있는 철학자 최진석은 이 세상 나라들을 전술 국가와 전략 국가로 나눈다. 남이 깔아 놓은 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등바등하는 나라들이 전술 국가라면, 그런 판을 깔아 놓고 느긋하게 질 높은 삶을 누리는 나라가 바로 전략 국가다.

나는 일찍이 애플과 삼성을 각각 '출제 기업'과 '숙제 기업'에 비유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꺼내 놓으면 삼성이 밤새워 속도와 기능을 개량하며 뒤를 쫓는다. 갤럭시 폴더블폰이 삼성을 드디어 출제자 지위에 올려줄지 지켜볼 일이다. 오랫동안 선진국 문지방을 맴돌던 우리에게 "전략 없는 전술은 승리로 가는 가장 느린 길이고, 전술 없는 전략은 패배하기 전에 내는 소음이다"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이 뜻깊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나라가 드디어 전략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바이러스 대유행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전처럼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선진국을 베끼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 전략을 세우고 의료진과 국민이 한데 뭉쳐 구체적인 전술들을 슬기롭게 수행해냈다. 그랬더니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성실하고 희생적인 방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악조건에서도 경제 정상화를 이룩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 조심스레 일상으로 복귀해 경제를 되살려내는 기적을 이뤄내자. 그러면 세계가 또다시 우리를 따라 할 것이고, 그래서 국제 경제가 되살아나면 그 혜택은 수출 의존도가 특별히 높은 우리가 제일 크게 누리게 된다. 대한민국의 리더십으로 세계 경제가 U자형이 아니라 V자형 반등을 이루길 기대해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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