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만
바람 꺾이는 소리도 남기지 않고
다사로운 땅의 품에 안겨
이리 깨끗하게 죽을 수 있음도
한량없는 축복인 것을.
오, 無量, 無量淸淨土.
동백은 산다화, 다매화, 해홍화라고도 부릅니다.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추운 겨울철의 세 친구인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하듯이,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르기도 합니다.
화사하게 볕이 내리쬐는 어느 이른 봄날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지심도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음 심(心)’자처럼 생겼다는 지심도엔
후박나무, 대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등이 이 자그마한 섬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동백나무가 빽빽한 숲 속을 걷다 보면 우린 어느새 동박새가 된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동백꽃과 동박새, 그리고 우리들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정답게 숲 속을 거닐었습니다.
탐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붉은 동백꽃이 나무에서 툭 떨어집니다.
땅의 품에 송이째 깨끗하게 떨어진 동백꽃들은 처연하게 아름다웠습니다.
동백꽃처럼 깨끗하게 죽을 수 있음도 한량없는(無量) 축복인 것을 낙화하는 동백꽃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극락세계인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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