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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무지개 너머'를 노래했으나… 그녀에겐 몸 누일 집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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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주디

"콧날이 너보다 날렵하고 치아도 더 고르고 더 키가 크거나 날씬한 애들은 많아. 하지만 넌 그 아이들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주디'(감독 루퍼트 굴드)는 배우이자 가수 주디 갈런드(1922~1969)의 실화(實話)에 바탕한 영화다. 갈런드의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그녀가 1939년 출연했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인공 도로시가 불렀던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 프랭크 시나트라부터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수많은 팝 스타가 리메이크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주디'의 갈런드 역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로 친숙한 러네이 젤위거(51)가 맡았다.

조선일보

주디 갈런드 역을 소화한 배우 러네이 젤위거. 아카데미를 포함해 16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퍼스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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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가면 네 목소리는 곧장 잊히고 말 거야. 하지만 네 가족인 우리와 함께하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100만달러는 벌 수 있어." 영화는 소녀 갈런드를 발탁한 영화 제작자의 협박성 훈계에서 출발한다. 그 뒤 하루 18시간에 이르는 혹독한 촬영과 피자 한 조각도 입에 댈 수 없는 엄격한 체중 조절, 수면 부족과 약물 과용 의혹 등이 쏟아진다. 아이돌 스타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와 노예 계약 논란이 심심치 않게 불거졌던 우리 입장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주제다. 실제 갈런드는 네 차례 이혼과 신경쇠약, 자살 기도라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결국 진정제 과다 복용으로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갈런드야말로 불행한 스캔들로 얼룩진 미국의 원조 아이돌 스타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눈부시지만 짧았던 절정 이후 서서히 추락하는 갈런드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두 아이를 데리고 심야 무대를 전전하면서 노래하고, 호텔에서도 숙박료 연체로 쫓겨나기 일쑤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소녀 도로시는 "집만 한 곳은 없어(There is no place like home)"라는 명대사를 남겼지만, 정작 갈런드는 일정한 주거조차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짙은 눈 화장으로 초췌함을 애써 가린 젤위거의 얼굴 위로 갈런드의 비극적 삶이 겹친다. 망가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느낌까지 살려낸 젤위거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를 포함해 16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관객 대부분은 '오버 더 레인보'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터. 하지만 영화는 갈런드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이 노래를 막바지까지 아껴둔다. 대신에 타계 6개월 전의 런던 콘서트를 다룬 중반부터 올드 팝 애호가들에게 친숙한 선율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살짝 비음(鼻音)이 섞인 목소리로 반음이 떨어지거나 박자가 늘어지는 대목까지 명확하게 포착한 젤위거의 노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 영화의 장르가 있다면 '고독한 1인극'일지도 모른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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