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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코로나 틈타 힘키우는 스트롱맨에 `격리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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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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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85] 세계 권위주의 성향 지도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권력 장악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으로 '동유럽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행보가 가장 과감하다. 외신들은 "코로나 혼란을 틈타 한계선(red line)을 넘어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고 있다.

헝가리 의회는 30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방지법'을 찬성 137대, 반대 53으로 가결시켰다. 이름 붙여진 대로 법안의 취지는 코로나 대응이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6월이나 늦으면 7월까지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위급한 상황인 만큼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가 방역과 관계없는 '권력의 백지수표'를 얻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통과된 법안 가운데 최악의 독소조항은 국가 비상사태 연장이다. 정부는 기간 제한 없이 비상사태를 유지할 수 있고, 이를 위한 국회 동의도 필요 없다. 웹사이트에 공개된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명령을 내려 기존 법률 효력을 중지할 수 있고, 국민의 안전과 경제를 명목으로 '특별한 조치'를 실행할 수 있다.

야권은 임의적 법 집행이 가능한 비상사태의 기한을 못 박자고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연정 '피데스'가 표결에서 오르반의 든든한 뒷배가 됐기 때문이다. 야당인 헝가리를위한대화당의 티메아 스자보 의원은 "그동안 10년 넘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억압에 힘써온 오르반 총리가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필요한 것"이라며 기한 설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실제로 오르반 총리는 2015년 이민 사태 때 선포했던 비상사태를 여지껏 해제하지 않고 있다.

정부 견제 수단도 막막해졌다. 언론을 비롯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은 최대 5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게 됐다. 14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오르반 총리는 그동안 80년 역사의 일간지를 폐간하고 친정부 성향 언론을 통합한 거대 언론재단을 움직여 언론 통제를 일삼아왔다. 이번 법안으로 의혹 제기 자체를 탄압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헝가리 당국은 공식 발표보다 실제 코로나 환자가 더 많다고 주장한 이를 가짜뉴스 유포 혐의로 체포해왔다. 시민단체와 야권은 앞으로 언론 탄압이 훨씬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의회 강제 해산이 가능해진 점도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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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모습/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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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 총리는 의회 표결 직후 코로나19 방지법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권한을 균형적이고 이성적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계속 운영되니 정부 권한 견제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는 장기 집권을 하면서 사법부를 무력화시켜 삼권분립을 이미 불구로 만들어놨다. 2011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11명에서 15명으로 증원하고, 늘어난 4명을 여당이 단독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2년에는 사법부와 검찰 인사를 물갈이하기 위해 판검사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바꿨다. 274명에 달하는 판검사가 하루아침에 강제 은퇴를 당했고, 이들의 빈자리는 오르반 지지 성향의 젊은 법조인으로 채워졌다. 강력한 기본권 제한으로 비판받는 이번 법안도 헝가리 법무부 장관이 발의했다.

헝가리의 독재 행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전 총리인 마테오 렌치는 이날 트위터에서 "유럽연합(EU)은 오르반 총리의 마음을 바꾸든지, 아니면 간단히 헝가리를 연합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밥 메넨데즈 미 상원의원은 "코로나를 이용해 완전히 날아다니는 독재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다비드 비그 국제앰네스티 헝가리 국장은 "오르반 정부가 기한 없는 비상사태를 조성하고, 인권 제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이건 코로나19로 야기된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 지도자만 코로나 덕을 본 건 아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지난 2월 총선 이후 실각 위기에 처했지만 야당이 코로나 극복을 위한 협력 의사를 나타내 기사회생했다. 정치생명이 연장된 네타냐후는 자신의 부패 혐의 첫 재판을 연기했고, 정보기관 신베트가 의회 승인, 법원의 영장 없이 코로나19 확진자의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비상명령을 내렸다.

코로나 사태를 틈타 태국 쁘라윳 짠오차 총리도 언론 검열 강화 조치를 발표했고, 요르단 오마르 알 라자즈 총리는 거짓말이나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모든 사람을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의 자유 제한 등 기본권 제한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트롱맨들의 운신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NYT가 분석했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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