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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종범의 제3의 나이] 참 어른이 넘치는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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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쓰나미”

루이즈 애런슨의 저서 <나이 듦에 대하여>에 보면 미국 사회가 노년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

는 세 가지 표현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실버 쓰나미”다. 이 말은 인구 고령화가 사회적 불안정을 키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은유적 표현이다. 또 하나는 “특출한 어르신”으로 언뜻 생각하면 좋은 의미로 읽히지

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늙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어르신이 태반이기 때문에 일상생활만 멀쩡히 해도 대단한

는 빈정거림을 담고 있다. 마지막 하나는 “성공적 노년”으로 질병과 죽음은 곧 실패의 증거라는 선언을 암시

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젊어 보이세요?”

“늙었다는 말이지?”

“그런 뜻은 아닌데~~~~ 요?”

나이 들수록, 말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굳이 비틀고 꼬아

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스스로의 격을 낮춘다. 자칫 분쟁의 씨가 될 수도 있다. 사소한 것에 분개

한다. 자주 접할 수 있는 표현 중엔 나이를 들먹이는 말다툼이 대표적이다

“(언성을 높이며) 너 몇 살이나 쳐 먹었어?”

“(지지 않으려고 더 큰 소리로) 왜, 나도 먹을 만큼 먹었어, 얻다 대고 삿대질이야?”

“(한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뭐 삿대질,…”

그다음은 예측한 그대로다. 사실 이런 류의 다툼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장기판에서 한 수 물러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전철에서 새치기하길래 줄 서야 한다고 예를 갖추

어 말하면 오히려 어른한테 그런 소릴 한다고 나무라기 일쑤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 중엔 인정받을 만한 어

른이 없다. 완곡한 표현으론 노인이고 안 좋게 표현하면 꼰데, 연금충 소릴 듣는다.

어른이 사라졌다. 늙었다는 이유로 무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경험과 식견 때문에 자문을 구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모두가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경의 대상, 큰 어른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

이라는 이유로, <틀딱충>, <영감탱이>, <늙다리> 같은 언어적 비하 발언을 들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

다.

기로(耆老)

사전적 의미는 60세 이상의 노인을 이르는 말이다. 예순을 뜻하는 늙을 기(耆)와 일흔의 의미를 가지고 있

는 늙을 노(老)가 합해지면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을 지칭한다. 동양 철학 박성환 교수의 저서 <조선시대 기

로 정책 연구>에 기로의 무게 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고려 말 조선 초기, 연로한 분들의 모임으로 국정의 원로 역할을 담당하면서 왕을 보필하는 기로소(정

책 자문역)가 있었단다. 기로 회원들 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기로 회원이 되었고, 숙종, 영조,

고종 임금도 60세를 넘기면서 기로회에 가입했다는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로는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큰 어른 대접을 받는 사람들의 집단인 셈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어른을 대하는 시각도 변했다. 어른의 격이 과거와 같은 대접을 받는 시대는 아니다.

나이 들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 기로

(耆老)의 의미는 되새김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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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엔 큰 어른이 필요하다. 식견은 물론 경험과 혜안을 갖춘 사람으로 국민적 지지와 존중을 받는 인품의

소유자가 바로 그런 분이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들이 인생의 기로(岐路_갈림길)에 섰을 때 경험

과 지혜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이가 지극한 노인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아

니라 직전 세대가 참고해야 할 실존하는 경험 박물관인 셈이다. 그 안엔 취할 것이 가득하다. 늙었다는 이유

만으로 그들의 경험을 멀리하거나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하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배우려 할 때 비로소 어른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범 금융노년전문가(R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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