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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횡령·조작·은폐···'희대의 금융 스캔들' 라임사태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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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금융 스캔들". 이른바 라임사태에 대한 한 금융당국자의 평가다. 라임사태는 뭐고, 어쩌다 스캔들로까지 비화한 걸까.

라임사태는 국내 1위 헤지펀드 운용사 라임자산운용이 지난해 10월 플루토·테티스·무역금융 등 3개 펀드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157개 자펀드의 환매를 중단키로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추가로 환매중단된 크레디트인슈어드 펀드까지 하면 최종 환매중단 펀드는 자펀드 기준 173개, 1조6679억원어치다.

라임펀드는 현재 반토막 수준으로 망가졌다. 2월 14일 라임운용이 공개한 펀드 수익률은 지난해 9월말 대비 플루토 -49%, 테티스 -30% 수준이다. 라임운용은 최근 플루토의 수익률을 10.4% 추가 하향조정했다. 미국 헤지펀드의 폰지사기 등에 연루된 무역금융펀드는 거의 전액 손실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은폐, 수익률 조작, 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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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왼쪽)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이종필 전 부사장이 브리핑을 하는 동안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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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라임운용은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져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검찰 조사에 따르면 라임운용은 펀드 부실 은폐·수익률 조작·횡령·수재 등 범죄 행위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핵심인물은 이종필 전 라임운용 부사장이다. 2015년 라임운용에 합류한 그는 코스닥 기업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 펀드 등을 만들어 10%대 고수익을 냈다. 2015년 말 206억원에 불과했던 라임운용의 펀드 설정액은 이후 급증해 2019년 6월 말 5조6600억원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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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S 거래 흐름도. 임정근 변호사 저 『변호사가 경영을 말하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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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고수익은 증권사와의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로 만들어졌다. TRS는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펀드 투자금에 대한 일정 비율대로 투자회사의 주식·CB·BW 등을 대신 매입해주는 레버리지(차입) 계약이다. 투자금이 늘어나는 만큼 수익금도 커진다.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라임펀드에 TRS를 제공해 고수익을 뒷받침해줬다.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는 라임펀드를 앞다퉈 팔았다. 환매중단 펀드만 19개 판매사에서 1조6679억원어치 팔렸을 정도다. 프라이빗뱅커(PB)들에 따르면 당시 라임 펀드는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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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펀드 판매사 및 투자자 현황.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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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운용에 돈이 몰리자 무자본 인수합병(M&A) 작전세력이 꼬여 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라임펀드를 통해 자신의 코스닥 업체 스타모빌리티에 595억원을 투자받고, 이중 517억원을 횡령해 달아난 김봉현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8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코스닥 업체 리드 역시 라임이 500억원을 투자한 업체다. 이 전 부사장과 그 주변인들도 이에 가담했다. 검찰은 이 전 부사장을 리드 횡령 사건의 공범으로 보고 있다. 최근엔 TRS 증권사 중 한 곳인 신한금융투자의 담당 임원이 수재·사기 등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의 범죄로 라임펀드 투자기업이 부실화하자 펀드 수익률은 고꾸라졌다. 그간 고수익의 배경이 됐던 TRS는 위기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KB증권 영업창구에서 판매된 'AI스타 1.5Y' 펀드의 경우 기초자산인 플루토 손실률이 50%를 넘어서는 순간 전액 손실 구간에 들어갔다. KB증권 TRS 부서가 이 펀드에 두배 레버리지를 끌어다준 탓이다. 펀드는 TRS를 갚느라 수익자들에게 돌려줄 돈이 없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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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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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도 미흡했다. 지난해 6월 이상징후를 포착해 8~10월 두차례나 라임운용을 검사한 금감원은 여태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신 펀드 투자자산에 대한 삼일회계법인 실사, TRS 증권사들의 양보를 종용하는 등 권한 밖의 관리 업무에 치중했다. 그러다 정작 지난 1월엔 환매중단된 라임펀드에서 195억원이 추가로 유출되는 걸 보고도 이 돈이 작전세력의 횡령 자금으로 쓰이는 걸 막지 못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정책의 허점



정부의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 등은 라임운용과 범죄세력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준 꼴이 됐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정책은 펀드 간 자전거래(돌려막기)를 허용해줬고,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 조건 등을 대폭 완화했다.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적격투자자 기준을 투자금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춰 개인투자자가 손쉽게 유입되도록 했다. 2018년엔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의무적으로 코스닥·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코스닥 벤처펀드'에 소득공제 혜택 등을 주기로 한 코스닥 활성화 대책도 나왔다. 라임운용 역시 코스닥 벤처펀드를 운용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라임운용이 풀어진 법 안에서 자기 멋대로 깜깜이 운용을 하는 동안 금감원은 아무런 손도 못 썼고, 그 몫을 투자자들만 지게 생겼다"며 "또 다른 라임사태를 막으려면 사모펀드에 대한 세세한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운용사가 투자정보를 수익자들에게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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