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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집에 컴퓨터가 없는데요" 17만명 준비안 된 '온라인 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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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1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해 초·중·고 온라인 개학 실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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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에서 17년째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A씨는 온라인 개학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는 학생이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PC와 스마트기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학생도 있었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버지 사업장으로 같이 출근하는 아이도 있었다. A교사는 "온라인 수업으로 가정환경에 따른 학력 격차가 커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31일 초중고교 단계별 온라인 개학 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4월 9일 고3·중3이 온라인 개학하고 16일에 고1~2와 중1~2, 초등 4~6학년이, 20일에 초등 1~3학년이 개학한다는 계획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한민국 교육 역사에서도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유례없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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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온라인 개학 방안.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스마트기기 없으면 대여…초등 저학년은 EBS TV수업



당장 온라인 수업을 받기 위한 기기가 없거나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가정이 문제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아니더라도 다자녀 가정에서는 아이 수대로 스마트기기를 마련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교육부는 중위 소득 50% 이하 가정에 스마트기기를 보급하고 인터넷 통신비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PC 등 스마트기기 보유 현황을 조사해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가 보유한 기기를 대여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67% 정도 전국 조사가 완료된 상황인데, 17만여명이 스마트기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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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교육부가 내달 9일부터 고3·중3 학생들을 시작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기로 한 가운데,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온라인 개학을 위해 원격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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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를 마련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혼자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맞벌이나 조손가정에서는 더욱 학생 관리가 어렵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역에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들이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이 스마트기기로 게임을 하는 데엔 익숙하지만, 강의를 집중해 듣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마땅한 학생 관리 대책은 없다. 가정 내 학습 관리가 어려우면 학교에 나와 교실과 컴퓨터실 등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도록 한다는 정도다.

다만 초등 1~2학년은 PC나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어렵다고 보고 EBS TV 방송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습지를 우편으로 배달해주고 확인하거나 교사가 방문하는 방법, 한글 습득을 위한 간단한 앱 개발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상황 호전되면 '단계적 등교'



온라인 수업의 질적 수준에 따라 학습 격차가 벌어질 우려도 나온다. 이날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은 "교사의 수업 역량 편차가 크고 학교마다 준비 정도도 격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앞서 30일 페이스북에 "교사에 따라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의 편차가 크고 학교 인프라도 충분치 않다"며 온라인 개학에 반대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원격교육에 익숙한 교사들이 학교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온라인 수업을) 잘 모르는 교사는 잘하는 교사에게 묻고 배운다. 교사들의 집단지성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자발적 노력에 기댈 뿐, 근본적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총은 "학교와 교원에게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실현 가능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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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가 개학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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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등교가 언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유 부총리는 "등교 시기는 예단할 수 없다"면서도 "감염병 확산 추세에 따라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경우 모든 학교 전 학년이 한꺼번에 등교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등교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학년별로 나눠 등교하거나 학생의 3분의 1씩 등교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실장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완충적인 단계의 등교를 거쳐 전면 등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전민희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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