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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들어서면 초록의 야외 전시장이 나타난다. 점과 선과 구(球) 모양이 어우러진 추상 조각을 지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더욱 다채로운 조각들이 펼쳐진다. 다정한 가족들, 시소를 타는 직장인, 노인을 따라가는 염소들, 나를 쳐다보는 개 한 마리…. 그 옆에 무거운 통나무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임영선의 ‘사람들-오늘’), 땅 속에 하반신을 파묻힌 채 고뇌하며 어딘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영섭의 ‘5월’)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오늘’에서 사람들이 지고 가는 통나무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그들은 왜 저리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문득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모란미술관>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모란미술관은 1990년 문을 열었다. 조각 전문으로 출발해 지금은 조각을 중심으로 여러 장르의 미술을 소개하면서 작가들을 후원한다. 조각의 특성상 모란미술관은 야외전시장이 두드러진다. 이곳엔 국내외 조각가들의 작품 110여 점이 설치되어 있다. 보통의 조각공원에서 만나기 어려운 수작들이 많다.
남양주 모란미술관의 야외전시장과 기울어진 모란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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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전시장 한쪽엔 독특한 시멘트콘크리트 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자세히 보니 약간 기울어져 있다. 건물 같기도 하고 조각 같기도 하다. 미술관에서는 이 타워를 모란탑이라 부른다. 가로 3m, 세로 6m에 높이 27m. 둔탁하고 차가운 노출 콘크리트로 비스듬히 기울여 지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면 육중한 인물상이 사람을 맞이한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30년된 모란미술관, 국내외 조각가 수작 110여점 설치 전시
인물상 앞에는 ‘오귀스트 로댕 /발자크 /높이 275㎝ /1891~1898 작’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붙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댕 작품의 복제품이다. 그 사연이 범상치 않다. 로댕은 1890년 발자크 타계 40주기를 맞아 발자크상(像)을 제작했다. 첫 번째 단계로 먼저 석고로 발자크를 형상화했다. 석고상을 틀로 한 청동상은 몇년 뒤 완성되었다. 청동상과 별도로, 로댕의 석고 원작을 틀로 삼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아틀리에에서 1890년대에 석고 주조한 것이 바로 모란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이다. 로댕 조각의 복제품이라고 해도 이 또한 이미 120년이 넘었으니 그 자체로 귀중한 문화재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모란미술관의 이수연 관장이 지인으로부터 기증 받았다고 한다.
모란탑에서 사람들은 발자크의 얼굴을 올려다 보아야 한다. 망토 입은 발자크의 포즈와 얼굴 표정에서 고뇌가 밀려온다. 모란탑의 좁고 어둑한 공간, 탑의 저 높은 꼭대기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발자크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조각 전문 모란미술관에서만 가능한 이색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푸라움 악기박물관의 한강 풍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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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시립박물관> 남양주의 역사를 조망하려면 팔당역 근처 와부읍에 위치한 남양주시립박물관에 가야 한다. 여기선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남양주의 역사를 유물과 자료로 일별할 수 있다. 선사시대 유물, 남양주의 인물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들, 퇴계원 산대놀이와 같은 남양주의 민속과 연희 관련 유물, 조선시대 남양주 건축에 관한 자료 등. 남양주의 오랜 역사 속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시대는 역시 조선이 아닐 수 없다.
남양주시립박물관에서는 수시로 기획특별전이 열린다. 2020년 주제는 ‘조선 500년 남양주로 통하다.’ 조선시대 주요 사건과 관련 인물을 통해 남양주의 역사를 기억하고 남양주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취지다. 조선의 500년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 속에는 늘 남양주의 인물들이 있었다. 조선의 건국과 왕자의 난, 기묘사화, 실학, 항일독립운동 등 역사의 물줄기가 굽이칠 때마다 그 흔적이 남양주 곳곳에 남아 있다.
남양주 시립박물관은 남양주 출신으로 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석영ㅇ 특별전시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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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간 중간에 인물들을 라이벌 관계로 구성해 소개함으로써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묘사화의 파란 속에서 사림과 훈구 세력으로 대립했던 김식과 박원종 홍경주, 실학자였지만 중농 중심의 경세치용과 중상 중심의 이용후생으로 관점의 차이를 드러냈던 정약용과 서유구 등이 그렇다. 이번 기획전의 마지막 코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국난의 몸을 던지다.’ 온 가족이 만주로 망명해 전 재산과 목숨을 바쳐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석영 6형제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우리가 수난의 근대사를 헤쳐 올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였고, 그것이 바로 남양주와 뿌리가 닿아 있다. 남양주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이석영은 국가보훈처 선정 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기획전 ‘조선 500년 남양주로 통하다’ 의 의미는 더욱 뜻깊다.
<프라움 악기박물관> 남양주 곳곳엔 다채로운 문화공간이 있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관이 두드러진다. 남양주시립박물관, 실학박물관, 악기박물관, 커피박물관, 거미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등. 대부분 한강과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남양주 와부읍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프라움악기박물관. 2011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서양 악기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 곳곳엔 클래식 선율이 가득하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실물로 보기 어려웠던 고품격 악기들을 만날 수 있다. 우선 건반악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오래되고 희귀한 피아노들이 눈에 뜨인다. 1805년 영국 윌리엄 사우스웰사(社)에서 제작한 스퀘어 그랜드 피아노, 1808년 영국 존 브로드우드 앤 선스사(社)에서 제작한 그랜드 포르데 피아노 등 19~20세기의 명품 피아노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 피아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하프시코드, 포르테피아노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18세기 초에 제작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프랑스의 현악기 제작자인 장 밥티스트 비욤이 1873년 제작한 바이올린도 매력적이다. 한국의 슈베르트로 불리는 작곡가 이흥렬의 유품 기증 코너에서는 20세기 한국 음악사의 한 단면을 만날 수 있다.
프라움 악기박물관 2층에 전시된 하프와 바이올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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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움악기박물관은 매주 수요일에 브런치 음악회를,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 정기음악회를 개최한다. 박물관 2층 전시장 겸 공연장 밖으로는 한강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남양주시 조안면 수종사를 지나 북한강을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이 나온다. 유럽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붉은 벽돌 건물로 1층에 카페 겸 레스토랑이, 2층에 커피 박물관이 있다.
2006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국내 첫 커피 전문박물관이다. 커피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커피 역사에 관한 자료도 흥미롭다. 대한제국 황실의 커피 문화, 당시 한국 커피 문화의 확산 과정, 한국 최초의 다방 등에 관한 자료들이다.
박종만 관장은 커피 연구자다. 세계와 한국의 커피를 연구하고 커피도 직접 재배한다. 2007년부터 젊은이들과 함께 한국과 세계 곳곳을 찾아 커피 문화의 뿌리를 찾고 커피 역사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 커피의 시원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열정을 쏟아왔다.
유럽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북한강변의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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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은 매주 금요일 밤에 금요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 3월부터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다. 이곳의 금요음악회는 남양주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마니아가 찾아올 만큼 남양주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주필 거미박물관> 조안면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주필거미박물관, 진전읍에 위치한 우석헌 자연사박물관도 남양주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주필거미박물관은 국내 거미 박사 1호인 김주필 전 동국대 교수가 설립했다. 박물관이 다소 외진 곳에 있지만, 소장하고 있는 생물 표본의 엄청난 양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산왕거미, 무당거미, 농발거미, 호랑거미 등 우리나라 거미를 포함해 전 세계의 거미 표본 5000여 종(20여만 개체)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비와 나방 표본 1000여 점과 광물, 화석 등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살아있는 거미와 거북도 만날 수 있다. 그 양에 놀라고 거미학자의 열정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 관장은 주필거미박물관과 부속시설 일체를 동국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1997년 설립된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2019년 가을 문을 닫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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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종합촬영소> 사라지는 공간도 있다. 2019년 가을 문을 닫은 남양주 영화종합촬영소다. 이곳은 1997년 조성된 이후 한국 영화 제작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를 촬영한 판문점 세트가 특히 인기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영화종합촬영소도 그 역할을 마감하고 부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영화종합촬영소는 세트장 겸 소품 및 자료 소장 공간이었고 그렇기에 일종의 영화박물관이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맞은편 초입에는 아직도 영화종합촬영소 간판이 우뚝 서있다. 당당한 모습이 외려 쓸쓸해 보인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 또한 남양주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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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 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닥터만의 커피로드, 문학동네, 박종만
악기 그 아름다운 비밀, 프라움악기박물관
남양주 옛 향을 품다, 남양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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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hht1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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