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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한겨레 프리즘] ‘일 없는’ 일이 없으려면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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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윤주 ㅣ 산업팀 기자



지난 24일 만난 중소 아이티(IT)업체 대표는 “중소기업은 일 없이 인력을 계속 고용할 여력이 안 된다”며 “직원들도 일 없이 노는 건 눈치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내보내는 게 서로를 위해 낫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음달에는 직원 몇 명을 해고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발주가 끊겨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인건비만 계속 지출하기 어렵다는 대표의 고충도 이해가 갔지만 정말 직원들도 ‘일이 없어 눈치 보이는 것보다 해고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는 의문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실물경제 부진으로 실업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26일, 이달 셋째 주(15~21일)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328만3천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2년보다 4배, 이달 둘째 주보다 12배 늘어난 수치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과 이달 들어 실업급여 신청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0% 이상 급증했다.

실업은 취약한 계층에 먼저 다가온다. 대기업 안에서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밖에서는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 등이 실업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이스타항공은 최근 수습 부기장 80여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자회사의 하청 청소업체 등도 정리해고에 돌입했다. 얼어붙은 내수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폐업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25일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이 휴업이나 휴직을 통해 고용을 유지할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최대 90%까지 보전해주는 대책을 내놨다. 다음날인 26일 중소기업중앙회는 대책을 환영하면서도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전액을 지원하고 지원 한도를 높이는 등 추가 확대를 요구했다. 당장 매출이 없다시피 한 소상공인에게는 사업주 부담금 10%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고려해볼 만한 조처다.

30일에는 정부가 기존 대책에서 배제됐던 노동자들에게 2개월간 월 50만원의 긴급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나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이 그 대상이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고용 한파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개월간 월 50만원씩 지원금을 지급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 안전망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을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원 확대만큼이나 중요한 건 지원 속도다. 정부가 소상공인에게 연 1.5% 금리로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안을 내놨지만 신청이 몰리고 상담과 대출 심사에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 대출 ‘병목현상’이 지적됐다. 영세한 기업은 대금을 지급받아 바로 비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소위 ‘그달 벌어 그달 먹고사는’ 소상공인들은 몇 달씩 대출을 기다릴 여력이 없는 것이다. 4월1일부터 신용 등급에 따라 시중은행 등으로 대출 창구가 분산되고 출생연도에 따른 ‘홀짝제’도 일부 도입되는 만큼 병목현상이 해소되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쉽게 해고될 수 있다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일이다. 대기업·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사회 안전망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내 고용인력의 90%가량이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취약 계층’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 실업이나 폐업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의 적극적 대책으로 조금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 또 실업이나 폐업이 이런 위기 상황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닌 만큼 우리 사회가 밀려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얼마나 구축하고 있는지 자성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지난 30일 통화한 장갑 제조업체 대표는 150명이었던 직원을 50~60명으로 지난해 이미 줄였다고 말했다. ‘줄어든’ 100여명이 지금 너무 힘들지 않기를,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를 바란다.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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