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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오철우의 과학풍경] ‘질병 X’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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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질병 엑스(X)’라는 말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의 코로나19가 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예측한 미지의 질병 엑스, 그것이라는 것이다. 개중에는 더 나아가 질병 엑스가 통제 불능의 미스터리 질병일 수 있다며 미지의 두려움을 부각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 공중보건에 큰 위협이 되는 요주의 질병 목록을 작성하면서 왜 이처럼 모호하고 이상한 이름을 만들었을까? 이름의 유래를 좇아 여러 자료를 찾다 보면, 그것이 세계 공중보건의 새로운 비상대응 전략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말 감염병 대응전략을 새롭게 갖춰 이듬해 발표했다. 새 전략엔 ‘감염병 예방 행동을 위한 연구개발 청사진(R&D Blueprint)’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사진의 목적은 이전 대응방식의 한계를 줄여보자는 것이었다. 흔히 대규모 감염병이 터지면 떠들썩한 연구개발이 이어지지만, 사태가 가라앉고 관심이 줄면 연구개발도 줄어든다. 각지에 흩어진 연구 역량은 신속한 대응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지구촌이 합심해 지속적이고 신속한 연구개발을 이끌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선 연구개발 대상 질병을 정하고 그 연구를 일종의 패스트트랙처럼 운영하자는 것이다.

청사진 전략에 맞춰 우선 대상 질병이 정해졌다. 첫째 글로벌 공중보건을 위협하면서도, 둘째 백신과 치료제가 없거나 미비한 질병이 그 대상이 됐다. 크리미안 콩고 출혈열, 에볼라, 지카, 사스와 메르스 등 7개 질병이 지정됐다. 여기에 낯선 이름의 질병 엑스가 추가된 건 2018년이었다. 질병 엑스는 “현재는 알지 못하는 어떤 병원체”가 일으킬 수 있는 미지의 감염병을 뜻했다.

이렇게 보면 질병 엑스는 괴이하고 두려운 어떤 질병을 지목하는 게 아니라, 다음에 출현할 것으로 예측되어 대비해야 하는 신종 질병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엑스’는 묘하게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어떤 병원체이건 거기에 대입할 수 있는 미지수 ‘엑스’는 우리 문명이 마주한 공중보건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으로도 읽힐 수 있다.

개발의 속도로 야생은 줄어들고 야생과 사람의 접촉은 늘어난다. 신종 바이러스가 야생에서 인간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전보다 커진다. 한번 넘어온 병원체가 우연히 세계 연결망에 들어서면 세계 각지로 빠르게 퍼진다. 엑스는 언제 어디일지는 알 수 없더라도 출현할 것으로 예측되는 다음, 그다음, 다시 다음다음의 신종 병원체를 총칭하는 이름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코로나19는 그 이름이 만들어진 이후에 등장한 전형적인 첫번째 질병 엑스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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