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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세상은 세상, 나는 나? 세계는 자기 내면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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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의 휴심정] <지대넓얕 0> 펴낸 채사장 작가



세상 이루는 근본 구조는 ‘나-세계’

세상 오염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해

코로나가 ‘나와 환경은 하나’ 깨우쳐

우리 눈은 색안경에 둘러싸여 있어

진실 알려면 벗어버릴 용기 있어야

고3 때 ‘죄와 벌’ 계기로 책에 빠져

대학시절 휴학하며 종교철학 탐독

세상·인간의 본질 탐구 지속하다

교양 인문서 집필하며 유명작가로


한겨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를 펴낸 채사장 작가. 그는 ‘지대넓얕’ 시리즈 등 250만권이 판매된 밀리언셀러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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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 작가(오른쪽 둘째)가 출판사 편집자들과 선 채로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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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아웃사이드’ 말고 ‘인사이드’ 하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웃사이드로만 향하는 인간한테 ‘제 버릇 개 주기’가 어디 쉬운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웨일북 펴냄)는 인사이드 안내서다. 이를테면 ‘진리’에 대한 책인데, 자기계발서에 밀려 찾아보기 어려운 정통 인문서, 그것도 이런 내적 탐구서가 대중의 호응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더구나 작가가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나 <총·균·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유명 대학교수도 아니고, 종교인이나 철학자는 더욱 아니다. 석사나 박사조차 아니다. 대학원도 잠시 다니다 만 학사학위 소지자다. 나이도 고담준론을 하기엔 젊은 서른아홉살 독신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에 앞서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출간한 이른바 ‘지대넓얕’의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과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 등을 합쳐 무려 250만권을 판 밀리언셀러 작가다. ‘세상의 모든 지식’인 교양을 총망라한 ‘지대넓얕’ 시리즈로 공전의 히트를 친 그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영적인 ‘구도의 서’를 썼을까.

채사장 작가를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32길 웨일북출판사에서 만났다. 고뇌에 찬 철학자의 표정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고 평온하고 젊은 미남자다. 이미 그가 <열한 계단>에서 밝혔듯이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로 인한 심리적 변화가 구도행 저술을 불러왔을까. 그는 2012년 제주도에서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라산간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료들은 사망하고 그도 오랫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그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근원적인 물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물음이 있었기에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탐구는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과 문명, 석가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장자, 예수 등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과 종교·철학 등 138억년의 지혜를 관통한다.

채 작가의 ‘지대넓얕’을 본 독자들은 ‘전교 1등의 노트를 훔쳐보는 것 같다’고 한다. 그가 세상적인 지식은 그렇게 잘 정리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을 ‘요점정리’하는 게 가능할까. <금강경>과 <도덕경>, <요한복음>과 같은 지혜의 서들을 읽은 독자들은 알듯 말듯 한 난관 앞에서 다시 ‘신화적 믿음’의 단계에 안주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말이다.

이 책은 실은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 본질에 대한 것이다. 그의 첫번째 물음은 ‘세계의 근본 구조는 무엇이냐’다. 세계의 구조를 알기 위해 분류를 해보면 생물과 무생물,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천국과 지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더 근원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아와 세계’라는 것이다. 즉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와 그 자아가 경험하는 ‘세계’, 그것이 가장 근원적인 차이를 갖는다.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라는 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믿고 있는 가장 강고한 신념 중 하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이 신념에 철퇴를 가했다. 나 혼자서 병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이 오염되거나 전염되면 나도 결코 무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가 너와 나, 나와 우리, 우리와 환경이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면, ‘지대넓얕 제로’는 ‘내 눈앞에 드러난 세계가 곧 내 마음의 반영’이라는, 즉 이원론 너머의 일원론을 깨닫는 여정이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색안경의 브랜드가 있는데, 가령 기독교, 불교, 과학, 자본주의, 유물론, 공리주의, 불가지론 등이다. 사람들은 그 색안경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과 선입견을 멈추는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지금의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와 세계의 진실에 다가가고, 위대한 스승들의 사상에 닿고자 한다면 판단중지하고, 색안경을 잠시 벗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가 문·이과를 넘어서 교양을 총정리하는 ‘지대넓얕’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고교 때까지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아 머리가 ‘새것’이기에 가능했고”, 이렇게 ‘신비적 진리’의 정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한 종교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즉 두꺼운 색안경을 끼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그의 글을 쉽게 느끼는 것도 한 종교의 입장에서 믿음과 깨달음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 즉 마음을 설명하면서도, 수정구슬과 영사기에 비친 스크린에 빗대서 “우리가 보는 것(세계)은 실제(대상)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수정구슬(마음)에 비친 것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는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이처럼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설명한 데서 ‘넓고 깊은 지식’을 보여준다.

그는 고3 때 <죄와 벌>을 읽으며 독서다운 독서를 처음 하면서 인간이 신념을 기반으로 행동해갈 수 있다는 것에 자극을 받고,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에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너무 피상적으로 느껴져 2학년을 마친 뒤 1년 휴학을 하면서 도서관에 온종일 틀어박혀 종교철학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근원적인 질문을 풀기 위해 달려오면서도 군대를 제대한 뒤 6개월간 회사도 다니고, 잠시 의류나 화장품매장도 하고, 논술강사도 하고, 주식도 해봤다.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이 먹고사니즘 아니면 구도였던 셈이다.

그는 이원론의 감옥을 탈출해 일원론으로 귀결했음에도 ‘마음만 다스리면 세상의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건 아니다. 지대넓얕의 교양편에서 집중적으로 언급했듯이 그는 “생산수단이 없는 빈자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또 어느 정당이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해줄지 명확히 알고 투표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정부는 세금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과감히 쓰는 제도적 복지 정책도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 ‘제로’에서 탐구할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학생들의 개학이 마냥 늦어진다고 해도 만약 집에서 <지대넓얕>을 읽는다면 결코 이 시간들을 허비하는 게 아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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