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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설왕설래] 텔레그램 탈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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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국무회의에서 “인터넷상의 허위 사실 유포에 강력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이틀 뒤 전격적으로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신설했다.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 체포된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그룹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누리꾼 사이에 ‘사이버 망명’ 사태가 벌어졌다. 해외에 서버가 있어 우리 수사당국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터넷 암호메신저 ‘텔레그램’에 한 달여 만에 한국인 100만명 이상이 가입한 것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인 ‘VK’(브콘탁테)를 만든 파벨·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개발했다. 2012년 VK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정보교환 창구가 되자 러시아 정부는 시위대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라고 압박했다. 그러자 형제는 러시아연방보안국의 협조 공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뒤 VK 지분을 매각하고 독일로 망명했다. 2013년 ‘검열받지 않을 자유’를 기치로 내세워 텔레그램을 만들었다. 텔레그램의 대화는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2014년 상금 3억원을 걸고 텔레그램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해킹 대회를 열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보안이 뛰어난 텔레그램은 양면성을 지닌다.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활동가들의 소통 창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테러조직이나 마약·성범죄 소굴로도 악명을 떨친다. 지난해 7월 홍콩 민주화 시위 참가자들은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텔레그램을 활용했다. 반면 지난해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 때 거론된 마약 ‘물뽕’이 텔레그램에서 공공연히 거래됐다. 드루킹 사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 스캔들,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 등에 텔레그램이 단골로 등장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텔레그램 탈퇴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텔레그램이 성착취 불법 동영상 유통의 온상인 것으로 드러나자 지난달 25일과 29일 국내 가입자들이 정해진 시각에 동시에 대거 탈퇴했다. 한국 경찰 수사에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자 압박에 나선 것이다. 텔레그램이 악성 범죄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끝까지 지켜줄지 주목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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