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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저는 은행대출 안 된다고요?"…발길 돌린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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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양성희 기자, 이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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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중구 소재 한 시중은행 영업점 기업고객 전담창구 풍경/사진=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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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연신 왔지만 창구는 한산했다. 코로나19(COVID-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4개 시중은행에서 '연 1.5% 초저금리 대출'을 출시한 1일, 은행 영업점 풍경이다.

A은행 남대문 지점의 대출 직원은 전화기에 대고 "조회해 보니 신용등급이 1~3등급에 해당이 안 됩니다. 저희 은행에서는 어렵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쪽으로 가셔서 안내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소상공인 대출은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일부 고객들은 대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연 1.5% 대출 출시 첫 날, 은행 창구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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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재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마련된 '코로나 19 피해기업 금융지원 전담창구'/사진=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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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9시10분쯤 대출 신청을 위해 이 지점을 찾은 한 소상공인은 "평소 A은행과 거래해서 왔는데, 신용등급이 낮아 기업은행으로 가라고 해서 허탕을 쳤다"고 말했다.

반면 이미 보증서 담보로 대출을 신청한 사람들은 굳이 창구를 찾지 않았다. B은행 지점 직원은 "비대면 신청이 가능하고 사전에 안내한 측면도 있어 소상공인들이 주로 오전 늦게 가게 문을 연 뒤 오후에 오기 때문에 아직은 고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시중은행까지 대출기관을 확대해 소상공인들에 빠르게 대출을 해주겠다는 정부 정책의 취지가 무색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시중은행이 취급할 수 있는 대출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C은행 명동역지점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신용등급 1~3등급 고신용자만을 대상으로, 만기 1년 짜리 대출을 지원하다 보니 사실 소상공인들에게 큰 메리트가 있진 않다"며 "진짜 대출이 급하신 분들은 저신용자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진공쪽에 업무가 몰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소상공인은 "2개월 더 기다려 만기 5년인 소진공 상품을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상공인들 "그런 대출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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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한산한 남대문시장 거리 모습. '임대 문의' 문구가 내걸린 곳도 많았다./사진=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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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출시 첫 날이라 아직 홍보가 덜 된 영향도 있었다. 상당수 소상공인들이 시중은행에서 소상공인 대상 초저금리 대출을 판매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50년 넘게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식료품가게 주인은 "여기서 장사를 하는 동안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처음인데, 평일이고 주말이고 아무도 안 온다"며 "그런 대출이 있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을지로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사장도 "점심장사를 하는데,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손님이 반토막 났다"며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받으려 새벽부터 줄을 잔뜩 선다는 뉴스만 봤지 일반 은행에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국 "걱정 말라"에도 일선 현장에선 '면책'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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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재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마련된 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전용 창구에 상품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비치돼있다./사진=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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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을 차례로 돌았다. 은 위원장은 은행을 찾은 소상공인에게 "처음 왔느냐", "줄은 서지 않았느냐", "서류준비에 어려움은 없느냐", "4월 1일부터 은행에서도 초저금리 대출이 가능한 걸 알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어 "신용등급이 좀 높은 소상공인은 소진공 말고 은행에 와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 위원장을 비롯해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도 현장지원에 나섰다. 2일엔 윤석헌 금감원장도 현장을 찾는다.

은 위원장은 금융회사 직원에겐 다시 한번 면책과 금융감독원 검사 제외를 설명했다. 특히 은 위원장은 금융위와 금감원 공문을 챙겨와 직접 은행 창구 직원에게 서명을 한 뒤 전달했다. 또 업무 과중에 따른 은행 직원들의 야근 현황 등을 묻고 대응 상황도 살펴봤다.

이처럼 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는 등 금융당국이 여러 차례 '면책'을 강조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도 여전했다. D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선 면책해주겠다고 빠른 금융지원을 강조하지만 나중에 손실이 나면 결국 은행이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며 "그렇게 되면 직원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신용등급 1~3등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중은행의 초저금리 대출 상품은 최대 3000만원, 1년 만기에 연 1.5% 고정금리가 적용됐다. 기업은행은 1~6등급, 소진공은 4등급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을 공급한다. 기본금리는 시중은행과 같지만 기업은행은 0.5%, 소진공은 0.8%의 보증수수료가 추가된다. 대신 초저금리 적용 대출기간이 3년, 5년으로 시중은행(1년)보다 길다.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양성희 기자 yang@, 이학렬 기자 toot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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