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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유레카] 코로나바이러스 대 종교바이러스 / 조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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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휩싸였다. 1일로 넉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전망은 암울하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우울증과 스트레스, 신체적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럴 때 종교는 고통받고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대다수 종교와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간구와 온라인 예배(법회)는 ‘안전거리‘를 지키면서 신앙을 다지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수많은 교회와 모스크, 시너고그(유대인 회당), 사원과 사찰이 시설을 폐쇄하고 종교 행사를 잠정 중단하거나 온라인 제례, 개인 수행으로 대체했다. 연중 순례자가 끊이지 않는 예수탄생교회(베들레헴)와 성묘교회(예루살렘), 이슬람교의 최고 성지인 메카의 그랜드모스크도 문을 닫았다. 생명 보호를 위한 종교행사 잠정 중단과 종교의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은 경전이나 교리의 자구에 갇힌 교조주의적 행태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신심의 증명을 그릇된 방식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나라 안팎에 사례는 넘친다. 한국에선 개신교 일부의 일탈이 계속 구설에 오른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자신과 주변까지 위태롭게 하는 꼴이다. 보건 당국의 만류에도 다중 집회를 강행하는 목사들의 공통 특징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곧잘 인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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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독교 성경의 마가(마르코)복음 해설서 <나는 예수입니다>를 펴낸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기독교는 ‘구약 코로나’에 감염돼 이성이 마비된 상태”라고 통렬한 쓴소리를 했다. “편협한 유대인의 종족신을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기 신으로 모실 이유가 없고, 예수가 그러라고 한 적도 없다”며 “예수가 중계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약, 즉 ‘사랑의 계약’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신약은 비유와 상징이 많고 시대적 맥락에 따른 해석이 필요해 성찰과 공부가 필수다. 반면, 구약은 절대적 선악의 이분법과 엄격한 계율, 보상과 징벌에 초점이 맞춰져 직관적이고 강렬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나님의 심판”, “전염병은 우상과 미신 탓”이란 주장은 새롭지도 않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너무 나가는 게 문제다. “예배하는 순간 하늘에서 신선한 공기가 내려온다. 마스크 벗어라”(김성광)라거나, “광화문 이승만광장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다가 하늘나라 가면 최고의 영광”(전광훈) 같은 일부 목사의 선동은 사람을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지와 무책임의 극단이다. ‘비유적 설교’와도 거리가 먼, 허황한 주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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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집안 출신인 종교연구가 대럴 레이는 오늘날 종교의 “증오와 불관용, 패권주의와 배타주의”를 숙주(신도)를 감염(배타적 교리)시켜 신체를 파괴(분별력 마비)하는 ‘바이러스’에 빗대기까지 했다. “통제되지 않는 근본주의는 사회 자체를 먹이로 삼는다”고도 했다. 저서 <신들의 생존법>에서다. 원제는 ‘신 바이러스(The God Virus)’다. 극단적 비유이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생물학과 현대의학의 성과를 차용한 비교·설명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는 신학교에서 종교학(석사)을 공부했다.

예수는 가르침을 설파하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다. 이때 ‘귀’는 ‘올바른 분별력’을 말한다. 다중에게 말할 수 있는 지위와 특권을 가진 이들일수록 먼저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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