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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코로나19 속 투표소 몰리는 중국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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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주중대사관 투표소 일찌감치 투표행렬

“마스크 투표 처음”…“정당투표 용지 긴 것도 신기”

격리 위험 무릅쓰고 투표 위해 장거리 여행까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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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된 1일 오전 중국 수도 베이징의 주중한국대사관 앞에는 전신 방호복을 차려입은 안내요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분증과 발열 검사를 마치고 정문을 통과하니, 바로 곁에 기표소 1동이 보인다. 안내요원은 “발열 증상을 보이는 교민이 있으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투표소 대신 저곳에서 투표를 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라고 귀뜸했다.

투표소가 마련된 대사관 다목적 홀에는 마스크 차림의 선거 사무원들이 널찍하게 간격을 유지하고 유권자를 맞이했다. 일찌감치 투표소를 찾은 교민들도 너나없이 마스크 차림으로 소중한 1표를 행사했다. 투표소 입구에는 가벼운 다과와 함께 손세정제가 비치돼 있다. ‘코로나19 투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첫날 일찍 오는 게 사람이 붐빌 때 오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안전할 것 같았다.” 막 투표를 마치고 나온 김수찬(44)씨는 지난 2월부터 ‘재택근무’ 중이다. 사실상 ‘자가격리’나 다름없다. 부인 조은정(40)씨는 “솔직히 투표하러 와도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인 집단거주 지역인 왕징에 사는 부부가 이만큼 시내 가깝게 외출한 것은 지난 2월 이후 이날이 처음이다.

아이티(IT) 업체에서 일하며 10년째 중국에 거주 중이라는 김씨는 “마스크를 쓰고 투표하는 것보다 50cm는 돼 보이는 정당투표 용지가 더 신기했다”며 “처음 들어보는 정당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투표용지를 보며,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지가 있는 교민은 지역구와 정당별 투표 등 2가지를, 거주지 등록이 안돼 있는 교민은 정당투표만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미대사관 등 세계 86개 재외공관(4월1일 현재)의 재외선거사무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에선 코로나19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총영사관을 제외한 9개 지역 공관에서 이날부터 6일까지 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중국 전역에서 모두 2만549명의 교민이 재외선거인으로 등록했다. 중국 교민 전체 규모가 줄면서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1700여명 줄어든 수치다.

“교민 안전과 방역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박혁 주중대사관 선거관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없이 번졌던 지난 2월 상황을 묻자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그는 “선거를 못치를 것이란 생각은 안했지만, 사실 암담한 상황이었다”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참여가 저조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교민들이 일찍부터 투표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고3 수험생인 딸과 함께 온 김보경(50)씨는 “대학에 제출할 서류를 떼러 영사관에 나온 길에 투표소에 들렀다”며 “코로나19 탓에 많은 분들이 투표 참여를 하지 못할 것 같아, 이런 때일수록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한 딸 오수민(19)씨는 소감을 묻자 “뿌듯하다”며 마스크로 가린 얼굴로 웃기만 했다.

투표소 진입로에 따로 마련된 ‘포토존’ 앞에선 막 투표를 마친 김유범(54) 임상희(47)씨 부부가 9살, 11살 난 두 딸과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중국에서 27년째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는 김씨는 “투표가 있을 때마다 참가해왔지만, 마스크까지 쓰고 투표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 일가족은 지난달 한국에 다녀온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가, 지난 14일에야 격리가 해제됐다.

주중한국대사관에선 베이징과 톈진, 네이멍구 교민이 투표를 하게 된다. 여전히 장거리 이동에 제한이 많아, 베이징 이외 지역 교민은 투표 참여에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사관 관계자는 “예년엔 대사관 쪽에서 베이징 이외 지역 교민들을 위해 교통편을 제공했지만, 이번엔 코로나19로 장거리 버스 운행이 제한돼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박인훈 톈진한국인회 사무국장(48)은 교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이날 오전 9시께 톈진을 출발해 2시간45분 남짓 만에 투표소에 도착했다. 시 경계지역 검문소에서 여권과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전화 큐알(QR) 코드 등을 검사했지만, 다행히 이동에 큰 제약은 없었다. 박 국장은 “투표를 하러 베이징에 다녀왔다가 자칫 14일 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교민들이 많다. 더 많은 분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오늘 다녀간 내용을 교민들이 참여하는 단체 채팅방에 자세히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루 베이징에선 전체 등록 선거인 4291명 가운데 20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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