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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신종 코로나와 함께 악화하는 중·일 관계…”짧은 봄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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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전개와 함께 개선된 중·일 관계

신종 코로나 사태로 시진핑 방일 미뤄지고

도쿄올림픽 개최 또한 내년으로 연기되자

동중국해서 일 군함과 중 어선 충돌하고

아소 다로 부총리는 “우한 바이러스” 칭하며

시 주석은 아베 총리와 전화 통화 않는 등

중·일 간 짧았던 봄날이 종언을 고하고 있어

중·일 간 봄날이 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이 미뤄지고 일본의 도쿄올림픽 개최 또한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애써 화해 분위기를 유지할 필요가 사라지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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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내 신종 코로나 상황이 점차 안정을 찾자 지방 시찰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항저우의 시시 습지공원을 방문한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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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명보(明報)는 1일 ‘중·일 간에 배가 또 충돌했지만, 시진핑 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 전화는 없었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글에는 “중·일 관계의 작은 봄날(小陽春)은 종언을 고했다”라고도 했다.

신종 코로나가 중국에서 한창 유행할 때만 해도 양국 관계엔 훈풍이 불었다. 중국 언론은 앞다퉈 일본의 중국 지원을 전하기에 바빴다. ‘산천은 다르지만 바람과 달은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山川異域 風月同天)’는 일본의 응원 메시지에 깊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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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중국 후베이성으로 보낸 의료 지원 물자에 ‘산천은 다르지만 바람과 달은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山川異域 風月同天)’는 문구가 쓰여 있어 중국을 감동시켰다. [중국 바이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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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간 우호가 이렇게 두터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국 간 많은 덕담이 오갔다. 원래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이끄는 중·일 관계는 2012년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는 동중국해의 센카쿠(尖閣, 중국명 釣魚島) 열도를 국유화하며 크게 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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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거주하는 화인들이 도쿄에서 일본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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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계가 개선된 건 미·중 무역전쟁이 터지면서다.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선진 기술을 획득하고 어려울 땐 우리 편을 늘려야 한다는 계산 하에 일본에 접근했고 일본도 미국의 변덕에 대비하는 한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대중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4월에 시진핑 주석이 일본을 찾는 걸 계기로 양국 관계 회복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었으나 뜻밖의 신종 코로나 사태로 시 주석의 방일이 미뤄지고 여기에 아베 총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올림픽마저 연기되며 중·일 관계의 짧은 봄날이 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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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본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의사 진행을 지켜보는 아베 총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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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일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달 30일 밤 동중국해에서 벌어진 중국 어선과 일본 군함의 충돌이다. 지난달 30일 밤 8시 30분께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 시마카제(島風)함이 중국 어선 한 척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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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이 중국 근해에까지 진출해 중국 어선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 해군의 중국 근해 진출은 드문 일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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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일본 호위함 선체에 1m 정도 크기의 구멍이 뚫렸으며 중국은 선원 1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이 밝혔다. 중국 어선엔 모두 13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으나 사망자나 실종자는 없었다고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사고 해역이라고 홍콩 명보는 지적했다. 일본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야쿠시마(屋久島)로부터 서쪽으로 무려 650km나 떨어졌지만, 중국 상하이(上海)에선 200km, 저우산(舟山)군도로부터는 불과 80km밖에 되지 않는 수역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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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함과 중국 어선이 충돌한 곳은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의 야쿠시마로부터는 무려 650km 떨어진 반면 중국 상하이 앞의 저우산(舟山)군도로부터는 불과 80km 떨어진 해역으로 눈길을 끈다. 일본 군함이 중국 근해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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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공해이긴 해도 일본 해상자위대 전함이 이렇게 중국 근해 가까이 접근한 건 드문 일이라는 게 명보의 분석이다. 이처럼 중국 근해에 접근하는 건 미 군함이나 하던 행동인 데 이제는 일본 전함까지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 군함은 바로 중국 어선의 사망자 여부를 확인해 현장 부근에 있던 중국 군함에 통보했다고 한다. 중국 어선도 단순한 어선이 아니고 중국 군함도 우연히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명보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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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밤 중국 어선이 동중국해에서 일본 군함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어선에 타고 있던 중국 선원 13명 중 한 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신종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최근 일본에서는 중국을 자극하는 다양한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미·중의 신종 코로나 발원지 논쟁과 관련해 직접적인 편 들기는 아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중국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노골적으로 “우한 바이러스”라 부른다. 그는 또 지난달 26일 중국과 가까운 세계보건기구(WHO)를 ‘중국보건기구(CHO)’라 부르며 중국이 발표한 확진자 수를 “믿지 않는 게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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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우한 바이러스“라 말하며 세계보건기구가 중국에 가까운 걸 비아냥거리는 차원에서 ‘중국보건기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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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얼마 전 쿵쉬안요우(孔鉉佑) 주일 중국대사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일본의 일부 언론이 “대만이 옵서버 자격으로 WHO에 가입하는 데 대해 중국이 긍정적으로 연구 중”이라고 보도했는데 중국 언론에선 “일본 언론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고 반박했다.

중국은 또 최근 일본에 장기 체류 중이다가 중국을 방문한 학자 위안커친(袁克勤)을 간첩죄로 체포했다고 공공연히 선전했다. 일본이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데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 표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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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30일 밤 일본 군함과 중국 어선의 충돌이 있었고 일본 군함은 현장 부근에 있던 중국 군함에 사고 관련 소식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중국 바이두 캡처]


홍콩 명보는 또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시진핑 주석이 세계의 주요 20개국(G20) 지도자와 대부분 통화를 가졌는데 주요 국가 중에선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일본의 아베 총리만이 빠졌다는 점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와 조만간 전화를 갖긴 했지만 이처럼 늦어지고 있는 게 중·일 관계의 미묘한 현재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명보는 전했다. 특히 미·중 간 코로나 발원지 논쟁 가열과 국제 사회의 중국 책임론 제기 등과 함께 중·일 관계의 작은 봄날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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